[씨네리뷰]'소름', 504호엔 피보다 진한 공포가 숨쉰다

제5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미스터리 공포 ‘소름’은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쉽게 ‘피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초반 택시기사 용현(김명민)이 입주한 아파트 504호에서 30년 전, 그리고 얼마 전 똑같이 화재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복선으로 제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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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윤종찬 감독은 초반 인물과 주변의 묘사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자주 깜빡이는 백열등 불빛, 을씨년스러운 복도 등 건물 분위기와 아파트 주민들의 우울한 표정이 어우러져 묘한 어둠의 조화를 이뤄냈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게 흠이지만 피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만드는 오싹함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내면의 상처가 있는 비정상적인 인물들이다. 스릴러에 흔히 등장하는 두뇌회전이 빠른 형사나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 캐릭터들은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용현이 여성 이상의 묘한 감정을 느끼는 여주인공 선영(장진영).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줄담배를 피워대는 그녀는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으로 얼굴은 물론 온 몸에 멍이 들어 있다.

피아노 강사 은수는 죽은 애인의 환영에 시달리고, 삼류 소설가 이씨는 504호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

영화는 용현이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인 선영을 도와 시체를 암매장한 뒤 두 사람이 몸을 섞으면서 미스터리와 심리 드라마가 결합된 구조로 진행된다.

이 작품의 아쉬움은 마지막 반전이다. 윤 감독은 용현의 몸에 남은 화상과 사진 등을 통해 그가 30년 전 일어난 화재 사건의 생존자임을 계속 암시하면서 결정적인 뒤집기를 준비한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지나치게 늘어지는 바람에 효과가 오히려 반감됐다.

MBC ‘뜨거운 것이 좋아’의 김명민은 영화 데뷔작에서 내면에 숨겨진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감성을 보여 인상적인 신고식을 가졌다. 장진영도 멍투성이의 망가진 얼굴로 좋은 연기를 보인다.

‘플레이 백’ ‘메멘토’ ‘풍경’ 등 기억에 대한 3부작 단편으로 주목받았던 윤종찬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18세 이상 관람 가. 부천영화제기간 중 20일 밤12시 복사골문화센터, 극장 개봉은 8월4일.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