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1首 주석 곁들여 쉽게 풀이
그를 장중보옥처럼 사랑하고 신임하던 정조의 승하 후, 벽파(僻派)의 음모로 천주교도로 몰려서 둘째형은 장살(丈殺)을 당하고, 셋째형은 흑산도로, 자신은 강진으로 유배를 당하는 길에서, 형님과 주막에서 길이 갈라질 때 읊은 ‘율정의 이별’은 애절하기 그지없다.
초가 주막 새벽 등불 푸르스름 꺼지려는데
일어나 샛별 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
두 눈만 말똥말똥 둘이 다 할 말 잃어
애써 목청 다듬으나 오열이 터지네….
부친의 무덤에 하직하면서 읊은 ‘하담의 이별’,흑산도에서 고생하는 형님을 안쓰러워하는 ‘보은산 꼭대기에 올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일곱가지 그리움’ 등 여러 시에서 드러나는 그의 여리고 다정한 마음이 통렬하게 사무쳐 온다. 자신의 결백성에 대한 당시의 권력층의 비아냥에 답하는 ‘오징어 노래’는 풍자시로서 일품이다.
모기에게 뜯기고 지네와 동거하고, 어깨가 마비되고 이가 빠지는 귀양살이의 괴로움은 대부분 가벼운 자조의 시구로 표현을 했고, 유배지의 풍광과 깨끗한 자연에는 아낌없는 찬미의 송가를 불렀지만, 백성의 괴로움과 곤궁, 그리고 관가의 가렴주구와 아전의 횡포는 다산의 분노와 오열을 자아내었다.
◆ 해학 풍자로 영욕의 시대 묘사
죽은 사람과 간난아이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가렴주구에 시달리다 못한 어느 양민이 아들이 태어나자 자기의 성기를 자른 사건은 유명한 ‘애절양(哀絶陽)’의 계기가 되었고, 조세 불평등과 서북지방 차별, 관(官)의 고리채놀이인 사창(社倉)제도, 과거전형의 모순과 선발부정, 적서차별, 세도가의 벼슬 독식 등을 여러 편의 사회고발시에서 성토했다.
귀양살이에서 풀려 난 후의 시에는 친구를 사별한 슬픔과 친구와 다시 교류하게 된 감격이 담겨있고, 자신의 늙어 가는 모습은 탄식 대신 경쾌한 해학적 터치로 그려내었다. 참으로 ‘인 의 예 지 신 충 효 자 애’를 모두 갖추었고 엄격하기가 추상과 같았고 자애롭기가 어머니 같았던 다산의 여러 면모를 느끼게 해 주고, 일생 영욕이 엇갈렸고 오래 고달팠으나 변함 없이 고고했던 인간 다산을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그의 시집은 혼탁해진 우리 마음을 정화해주는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
서지문(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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