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두껍고 재미있고 한없이 슬픈 책이다. ‘나는 여행과 탐험가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이제 나의 여행담을 얘기하려고 한다’고 시작되는 첫머리에서 ‘세계는 인간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없이 끝날 것이다’라는 가슴 철렁한 지문을 담고있는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독자를 압도한다. 꼼꼼한 관찰과 정치하고 대담한 사고가 시종 시적인 산문속에서 전개되는데 한결같이 참신하고 도발적이다.
1955년 발간된 이 책은 분명 20세기가 생산한 가장 뛰어난 고전의 하나이다. 언뜻 보아 탐색 여행이 끝난 뒤에 쓰여진 회고록처럼 보이지만 이 책이 갖고 있는 의미의 층위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우선 구조주의 사상가의 지적인 자서전이면서 한 인류학자의 상세한 현장연구의 책으로 읽힌다. 1938년 브라질 내륙의 원주민 사회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가 중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가령 연구대상이었던 부족에게 작별을 고할 때 부족의 연장자들이 울기 시작하였다. 그와의 작별이 슬퍼 우는 것이 아니라 살만한 가치가 있는 지상의 유일한 장소를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그가 측은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이러한 원시적 무구와 행복을 정감있게 그려 보이는 이 책은 일급의 문학책이면서 과학적 탐구의 엄격성과 냉철함을 아우르고 있다.
소멸이 선고된 미개 부족에 대한 기다란 만가(輓歌)로도 들리는 이 책에서 가령 남비콰라족에 대한 몇몇 관찰과 성찰을 살펴보면 책의 특징이 스스로 드러난다. 남비콰라족은 ‘예쁘다’와 ‘젊다’는 뜻을 한 단어로서 표현하고 ‘추하다’와 ‘늙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을 보고하고 나서 저자는 그들의 심미적 판단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가치, 특히 성적인 가치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적인 것이 에로스 충동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프로이트 이전에도 간파되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프로이트에 와서 더욱 견고한 보증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지질학,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을 왕년의 ‘세 애인’이라고 술회한 바 있는데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저자는 또 글자를 알지 못하면서 글씨 쓰는 흉내를 내는 어떤 추장의 사례를 보여주며 일종의 기억 형태로서의 문자의 성질과 기능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하여 문자가 인간의 지식을 공고하게 하기 보다는 영속적인 지배체제의 확립에 기여하였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문자와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실감나는 보고이다.
남비콰라 족장의 자기 정의도 흥미롭다. 족장은 전쟁을 할 때 선두에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저자가 만난 족장은 말한다. 그들 사이에서 정치적 권력은 세습적인 것이 아니다. 소임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족장이 후계자를 임명한다. 그렇다고 자의적으로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을 살펴본 뒤에 부족민에게 호감을 사고 있는 사람을 지명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위세와 신뢰감이 그 사회에서 권력의 기반이 되는데 부족민의 동의가 족장의 지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족장이 소임을 수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은 관대함이다. 족장에게 준 선물이 며칠 후에는 부족민의 손으로 넘어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족장은 위험부담이 큰 어려운 일을 도맡아하고 사실상 희생적 봉사의 생활을 한다. 그 대신에 그가 누리는 특권은 여러 아내를 거느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직책의 부담에 대한 정신적이며 감정적인 위로인 동시에 중임을 맡기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권력의 심리적 기초가 동의이며 일상생활에서 그것은 족장과 부족민 사이의 급부와 반대급부의 작용에서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루소가 말하는 ‘계약’과 ‘동의’가 사회생활에서 기본 질료이며 그것 없는 정치조직의 형태를 상상할 수 없다고 피력한다.
참으로 단순하여 개개 인간만을 발견하였다는 남비콰라족 사회를 관찰하면서 저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우수어린 통찰을 보여준다. 관점에 선행해서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점이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소쉬르 언어학의 한 명제를 구현하고 있는 실례이다. 논쟁적 저서 ‘야생적 사고’의 원자재인 이 책은 레비 스트로스의 전문서가 공유하고 있는 어려움에서 자유롭다는 것도 특징이다.
유종호(문학평론가·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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