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서지문/견권(犬權)과 인권

  • 입력 2001년 7월 13일 18시 47분


18, 19세기 영국에는 도처에서 동물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의학 연구를 위해 동물을 산 채로 해부하는 실험실들에서였다. 그런 잔인한 실험에 반대하는 인도주의자들이 실험실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실험실을 때려부수는 일도 빈번히 벌어졌다. 이제는 그런 비인간적인 동물 생체해부는 사라졌고, 초기 단계에서의 동물 생체해부를 밑거름으로 한 의학 발전으로 반대론자들의 후손도 혜택을 보고 있다. 그러나 영국인의 동물학대에 대한 거부감은 지금도 엄청나게 강하고, 어떤 공적인 인물이 동물학대자로 알려지면 대중의 신망을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보신탕의 계절이 되었다. 개고기를 즐겨 먹는 한국의 신사(?)들은 유럽인들이 한국인의 개고기 먹는 습관을 안 좋게 본다는 것에 대해서 매우 아니꼬워한다. 그들은 한국에서 잡아먹히는 개는 애완용이 아니고, 남의 나라 식문화에 대해 비난을 하고 시위를 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며 한국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분개한다. 그러나 그들이 분개하는 것은 유럽 동물보호주의의 뿌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자국인들이 쇠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고 외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라든가(많은 동물보호주의자들은 그러나 채식주의자들이다) 동물은 끔찍이 여기면서 영국이 식민지에서 저지른 만행은 어떻게 그냥 두고 보았는가(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등 동물보호주의에도 지적할 수 있는 모순은 있다. 그러나 동물보호주의의 뿌리인 인도주의 정신은 역사적으로 모든 중요한 개혁의 추진력이었고 오늘날도 인권의 확실한 파수꾼이다.

▷옆집에서 어린이나 아내가 학대를 당해도 남의 집안 일이니까 모른 척 하겠다든지, 남의 나라 안에서 소수민족이 핍박받는 것을 알아도 남의 나라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비인도적이고 나태한 자세다. 개고기를 먹는 습관은 버리지 못하더라도 동물보호주의자들의 인도주의 정신은 인정을 하고, 우리도 이웃나라의 인권상황에 더 관심도 갖고 강력한 항의도 해서 변화를 유도했으면 한다.

서지문 객원 논설위원(고려대 교수·영문학)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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