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기습폭우]안양 김공열씨 지하주차장서 '5시간 사투'

  • 입력 2001년 7월 16일 00시 25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코밑까지 물이 차오르자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반드시 살아서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5일 오전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경기 안양시 안양2동 삼성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5시간만에 구출된 이 아파트 주민 김공열(金公烈·50)씨는 사고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쳤다.

김씨는 이날 오전 3시경 “인근 삼성천이 범람했으니 지하주차장의 차를 대피시키라”는 관리실 방송을 듣고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뉴프린스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지만 1분도 못 버티고 꺼져버렸다.

서둘러 차 밖으로 나온 김씨는 출입구 쪽으로 달려갔으나 거센 흙탕물이 밀려 들어왔다. 다른 주민들은 이미 차를 팽개친 채 빠져나간 뒤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물이 차오르자 주차장 천장에 설치된 두께 3㎝ 정도의 스프링클러용 파이프에 매달려 천장과 물 사이의 15㎝ 정도 틈새에 겨우 얼굴만 내놓았다.

“2시간 정도 매달리자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뚝, 뚝’ 쇠파이프가 끊어지는 소리도 들렸어요. 필사적으로 움직이면서 찬송가와 성경구절을 암송했습니다.”

김씨는 그런 자세로 출구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계속 움직였다. 3시간 정도 헤맸을까. 희미한 사람 소리가 났고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전 8시 20분경 “살려달라”는 김씨의 목소리를 듣고 119구조대 잠수부원들이 김씨를 구출했다. 지상에서 기다리던 주민 300여명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5시간 동안의 ‘물과의 사투’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안양〓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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