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손목부상을 치료하고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1월 올시즌 미국LPGA투어 세 번째 대회인 ‘오피스디포’ 정상에 오르며 일찌감치 ‘프로 2년차 징크스’에서 벗어났다. 내심 올시즌 상금왕까지 도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낭보는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다. 지난 6일 숍라이트클래식 2라운드에서는 경기를 포기해야할 정도로 손목부상을 당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를 잠시 떠나있는 그를 만나 희비가 엇갈렸던 지난 6개월의 얘기를 들어봤다.》
예상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밝았다. 전혀 풀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역시 고향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뜸들이지 않고 올시즌 기대에 못미치고 있는 원인부터 물어봤다.(물론 1승은 기록중이지만 올해 19개대회에 출전해 ‘톱10’에 세 번밖에 들지 못했기에)
“헝그리정신이 없다느니 승부근성이 부족하다느니 지적이 있는데….”
“저는 성적이 ‘모 아니면 도’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승부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억울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한테 지고는 못살았어요. 만약 승부욕이 부족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겠어요.”
박지은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각종 골프대회의 정상에 오른 것은 무려 62회. 그의 최근 부진이유를 승부근성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이 생각하는 부진의 원인은 무엇일까.
“솔직히 아직 프로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직업인 ‘골프’와 그밖의 생활이 밸런스를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특히 올 4월에는 게임이 잘 안 풀렸어요. 그래서 하루빨리 샷감각을 찾으려는 조급한 마음에 휴식도 없이 연속해서 대회에 출전하는 강행군을 했습니다. 그것이 부상도 잦아지고 슬럼프가 길어지는 화근이었던 것 같아요.”
그의 ‘패션’과 ‘화장’은 사람들의 눈에 띈다.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그것 때문에 ‘운동선수가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니 성적이 안 나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여자가 예뻐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화장하는 데 시간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아요. 경기 출전 직전에 선블록 바르고 그 위에 약간 화장하는데 시간은 2, 3분이면 충분하니까요. 그 정도 투자가 경기력에 지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량은 얼마나 됩니까.”(혹시 성적이 저조하면 술로 풀지는 않는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잘 마셔요. 하지만 대회기간 중에 마신 적은 한번도 없어요. 시합을 끝내고 집(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돌아오면 곧바로 스트레스를 풀러 바깥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집안에서 ‘홀짝홀짝’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혹시 골프를 관두고 싶었을 때는 없었나요.”
“사실 자주 관두고 싶어요. 하지만 다음 대회 일정이 잡히고 그것을 준비하고 일단 출전해서는 결코 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요. 그렇게 10여년을 지내왔습니다.”
박지은은 미국무대에서의 뛰어난 ‘상품성’ 때문에 프로데뷔 당시 ‘몸값’이 1000만달러를 호가했다. 그런데 아직 스폰서계약은 전무한 상태.
‘부잣집 딸인데 돈이 궁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요구하는 액수가 너무 커서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것 아니냐’가 주위에서 바라보는 일반적인 추측이다.
“프로선수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제가 더 잘한 이후 더 크게 터뜨리고 싶어요.”
그는 국내외 기업으로부터 CF제의도 수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공교롭게도 그 상품의 이미지가 자신과 맞지 않았고 메인스폰서가 결정된 이후의 일이라고 판단해 모두 미뤄두고 있단다.
“얼굴이 잘 알려진 공인으로서 생활하는 것에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지….”
“물론 매사에 조심해야 하는 점은 신경이 쓰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잘 못알아보시던데요. 며칠전 한의원에 갈 때 반바지를 입고 갔는데 다리는 까맣고 발만 흰 것을 보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다리와 발을 보더니 얼굴로 시선이 올라오더라고요.”
“성적이 부진했을 때 빼고는 별다른 고민거리가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있다면.”
“제 또래에 맞는 일반인처럼 살았으면 할 때가 많습니다. 항상 집을 기점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어요. 호텔생활이 이제 진력이 났고요”.
“미국진출을 희망하는 한국의 여자골퍼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두세요. 또 미국에 진출하려면 각오가 대단해야 합니다. 많이 울 테니까요. 생각보다는 무척 외롭고 힘든 생활입니다.”
박지은은 당초 예정보다 1주일을 더 쉰뒤 올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출전을 위해 바로 영국으로 직행할 예정이다.
<안영식기자>ysahn@donga.com
▼박지은 누구
△생년월일: 1979년 3월 6일
△가족관계: 박수남(삼원가든 대표) 이진애씨의 1남2녀중 차녀
△체격: 1m67, 55kg
△학력: 리라초등학교→호라이즌하이스쿨→애리조나주립대→이화여대
△특기: 스키,스케이트,수영
△취미: 피아노연주,음악감상
△골프시작: 초등학교 2년(8세)
△프로입문: 1999년
△통산우승: 62승(미국LPGA투어 2승, 퓨처스투어 5승, 아마추어 및 NCAA 12승,주니어 33승,영에이지 10승)
△주요수상: 99퓨처스투어 올해의 선수, 98전미대학최우수선수, 96전미체육대상,96전미주니어최우수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