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출산 때 탯줄 태반혈액을 뽑아 냉동 보관해 놓으면 혹시 아이가 나중에 백혈병이나 중증 류머티즘에 걸려 골수이식을 받아야 할 때 좋다”며 탯줄태반혈액은행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김씨는 “간호사가 강요하지도 않았고 만일의 사태 때 탯줄 태반혈액을 사려면 800만원이 든다는데 한 달에 10만원 밖에 들지 않는다니 솔깃했다”면서 “병원에 이런 은행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최근 벤처기업이나 병원들이 각종 조직은행을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조직은행은 나중에 필요한 사람이나 시신 등으로부터 인체 조직을 떼어내 보관하는 곳.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이달 초 ‘심장혈관조직은행’을 개설했다. 서울 미즈메디병원은 고환조직은행을 만들었다. 최근엔 한 벤처기업이 난자은행을 만들고 일본에서 난자를 산다는 광고를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직은 장기와 다르다〓조직은행에서의 조직은 장기이식 때의 장기와 구별된다. 장기는 떼어낸지 4∼48시간 내에 조직형 혈액형 등이 맞는 사람에게만 이식하므로 수혜자가 제한적이다. 이에 비해 조직은 냉동보관하면 길게는 몇 년 뒤에도 이식이 가능하므로 수혜자가 많다.
또 장기 이식은 ‘장기 및 이식에 관한 법률’의 까다로운 절차에 따라야 가능하지만 조직 적출과 이식은 대부분 큰 제약이 없다.
현재 장기는 뇌사자로부터 심장 간 췌장 소장 각 1개, 콩팥 허파 각막 각 2개를 얻을 수 있으며 조직은 뇌사자 뿐 아니라 완전히 숨진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다. 또 탯줄 태반혈액, 정자조직, 정자, 난자 등은 건강한 사람에게서도 얻을 수 있다.
▽국내 조직은행 현황〓요즘은 벤처기업이 조직은행을 잇따라 개설하고 있지만 원래는 인도적 차원에서 시작됐다.
95년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사랑의 뼈은행’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고 준비 과정에서 20여명의 뼈를 기증받아 800여명의 건강을 찾아줬다. 99년엔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와 가천의대 길병원이 ‘한국조직은행’을 만들었고 지난해엔 이 단체와 대한의사협회의 각 학회가 중심이 돼 ‘한국조직은행연합회’(02-363-2886)를 설립했다.
현재 연합회는 조직 기증 서약을 받고 있으며 조직은행의 상업화를 막기 위한 장치를 연구하고 있다.
▽탯줄태반 혈액은행 들까 말까?〓요즘 산부인과에서는 ‘탯줄 태반혈액은행’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이 은행을 유지하는 곳은 거의 없고 대부분 벤처기업과 연계해서 회원을 받는다.
벤처기업에선 탯줄태반혈액 이식의 범위가 넓어지는데다 기증자의 탯줄태반혈액을 돈이 있어도 기증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보험’ 차원에서 드는 것이 좋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벤처기업이 망하면 은행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보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보상이 모호하며 △나중에 백혈병 등의 치료법이 나오면 은행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회원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출산시 탯줄태반혈액을 병원측에 기증해 국내에서 기증되는 탯줄태반혈액이 많아지면 가족 등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전문가들은 다른 조직의 경우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갈 수 있으므로 ‘유언장 미리 쓰기’ 등에 동참해 사회 전반에 조직 기증 바람이 분다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개인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고 말한다.(도움말〓한국조직은행 최승주 사무국장,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소아과 조빈교수)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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