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최근 여의도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외국계 자본의 ‘여의도 공략’이 이제 본격적인 단계에 진입했다는 얘기였다. 대형 건물의 주인이 속속 바뀌는 것도 그렇고 한국의 증권시장을 대하는 외국인의 태도가 급격히 공격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올 들어 외국계 투신, 증권사들이 국내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은 이제 한국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저금리 기조가 정착돼 비은행 상품에 대한 장기투자에 관심이 높아졌고 채권 시가평가제 도입 등으로 제도적인 측면도 개선되고 있기 때문. 게다가 한국 증시가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3개국을 합친 것보다 커졌다는 점도 한 이유.
외국계 업체가 여의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국내 업체들에서도 감지된다. 대한투신운용은 최근 1600개에 이르는 운용 펀드 수를 3년 이내에 10여개로 대폭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조성상 사장은 “펀드를 대형화해야 장차 치열해질 거대 외국계 투신사와의 경쟁에서 맞설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투신운용은 유럽계 UBS애셋매니지먼트와 제휴를 맺고 외국인 전문가들을 초빙해 펀드 운용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있다.
이 같은 외국계의 공격과 국내업체의 방어는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 우선 외국회사들이 판매하는 해외 간접상품을 국내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는 점. 미국 유럽에서 최근 각광받는 섹터펀드(특정업종에만 투자하는 펀드)가 한국에서 동시 판매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
또한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운용시스템의 혜택을 입을 수 있게 된 것도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된다. 템플턴투신이 올 상반기 주식 성장형 펀드에서 국내 업체들을 제치고 수익률 1위를 차지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이해균 주식운용팀장은 “적정가격보다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되는 우량주를 산 뒤 목표 가격에 도달할 때까지는 무조건 들고있는 본사의 운용철학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템플턴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국내에서도 저금리로 인해 장기투자 분위기가 자리잡으면 장기투자 노하우에서 앞서는 외국 회사들이 부상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증권사의 경우 메릴린치가 랩어카운트 경쟁에 본격 뛰어든 것을 비롯해 외국계 증권사들이 소매 영업쪽으로 힘을 기울이고 있어 국내 증권사와의 한 판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우재룡 사장은 “국내 업체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외국계에 완전히 안방을 내준 일본처럼 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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