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록밴드만큼 저주 받은 항목은 없다.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송골매, 들국화, 넥스트를 제외한다면 단명의 연속이었다. 하향 평준화를 지도하는 공중파 방송의 지배논리와 오랫동안 상상력을 목졸라 온 검열과 각종 규제장치, 여기에 단단하지 못한 뮤지션들의 밴드철학이 더해져 언제나 단명의 비극으로 끝나곤 했다. 일관된 밴드 컨셉트로 다섯 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한 밴드라야 산울림과 송골매 정도니 한국에서 밴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알 만하다.
다섯 번째 앨범을 발표한 윤도현 밴드는 이 사실만으로도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 더욱이 매스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 마케팅을 통하지 않고 오로지 연간 200회 이상 콘서트를 강행군하며 하나둘씩 얻은 성과다. 비주류의 무기로 10만 장 이상의 판매액을 너끈하게 기록할 수 있는 밴드로 성장하기까지 이들이 흘린 땀과 피는 이제 자랑스런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멈출 수는 없다. 윤도현 밴드는 아직 미완성 밴드다. 이들은 온몸으로 팀워크를 완성했지만 ‘역사적인’ 밴드로 부상하기 위해선 더 날카로운 통찰력과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 능력, 사운드의 독창성을 연금해야 한다. 이 신작은 바로 그러한 전환의 문지방을 밟고 섰다. 전통적인 메탈 사운드의 카리스마를 포기하는 대신 모던 록의 섬세하고 몽환적인 기법을 대거 고용했다. 그러나 아직 그 섬세함은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고, 몽환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초월의 황홀경을 제공하기엔 힘이 부친다.
리더인 윤도현, 벌써 서른에 접어들며 음악이력에 제2막을 열고 있다. 이례적으로 통기타 한 대만의 반주로 자신의 내면을 반추하는 ‘독백’에서 피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새벽이/ 정지해 있는 들풀과 어린 나무가/ 말하지 않고 내 마음을 움직였다/ 너무나 조용히 나를 어루만진다….’
젊음의 힘으로 질주해 온 이 록 청년이 침묵과 정지에 눈뜨기 시작한 것일까. 그 정관(靜觀)의 혜안이 이들에게 가득 차 오르는 날, 우리는 아마도 가장 위대한 한국 록 밴드의 전범과 조우할 것이다.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authodox@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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