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우린 벨소리에 목숨 건다

  • 입력 2001년 7월 20일 17시 51분


벨소리는 이제 자신만의 개성적인 액세서리다. 그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어둠이 걷히고 희부윰하게 날이 밝아올 즈음. 딸랑 딸랑 종을 울리며 두부장수 아저씨가 리어카를 밀며 등장한다. 골목길에 접어들자 쓰러져 있는 학생 발견. 무슨 일이야, 후다닥 달려가는 아저씨.

전봇대에 간신히 기대 있는 학생은 얼굴이 온통 피멍투성이. 패싸움이라도 한건가. 얼룩덜룩한 교련복 차림에 모자까지 눌러써 학생이 분명해 보이지만 아무래도 양아치 냄새가 폴폴~ 풍긴다.

청년! 청년! 아저씨는 다급하게 흔들어 깨운다. 그러자 슬그머니 눈을 뜨는 우리의 청년. 아저씨 아저씨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부르더니 손가락으로 골목어귀를 가르키는데….

어라랏. '절 이렇게 만든 놈들이 저기에'라는 시늉인줄 알았더니 '아저씨, 그 벨소리 어디서 나셨어요?' 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벨소리가 아니라 벨도 없는 넘이네 허어.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벨소리가 더 중요하단 말이야.

순박한 두부장수 아저씨는 얼마나 황당하실까. 청년을 부여잡고 있던 손을 허탈하게 턱~ 놓으신다. 류승범의 머리가 전봇대에 부딪히고 새벽을 가르는 청아한 울림. '터어엉'

아침을 여는 새벽녘의 700-5425 광고는 이렇게 허탈하게 끝난다. 피투성이의 청년을 좀 보라. 얻어맞은 자신의 몸이 중요한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기발하고 독특한 벨소리를 내 것으로 하는 것에 더 집착한다.

양아치학생의 엉뚱하고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모델은 류승범이다. 친형인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몸에 밴 욕설을 구사하는 생날나리로 나와 과거를 의심케 한 배우다. 그때의 분위기를 아직 잊지 않은 건지 연출상 잘 살려낸 건지, 미워할 수 없는 코믹한 악동의 모습을 절묘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광고를 보면 언제부터 벨소리에 연연하게 되었을까 묻게 된다.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단말기가 등장하면서부터 생활은 급속도로 휙휙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자그마한 창을 띄워 이메일을 교환하고 아바타(자신의 이미지를 대신하는 시각적 이미지) 캐릭터를 다운받고 인터넷 검색을 한다.

이런 첨단의 분위기에 맞춰 벨소리의 역할은 전화가 왔음을 알려주는 일차적인 신호음 뿐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개성적인 표현으로 자리매김한다. 익명성의 시대가 아바타의 유행과 더불어 이제는 슬슬 자신을 대신할 '분신시대'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이 광고는 슬프다. 파릇한 젊은이의 아침이 너무나 허탈하지 않는가. 두부장수는 씩씩하게 아침을 열고 있지만 청년은 그제서야 힘겨운 하루를 끝마치는 시점이 교차하다니.

게다가 절망을 벨소리로 가볍게 대체하는 신세대적인 발상을 이해할 수 없는 두부장수는 매몰차게 자리를 뜬다. 속으로 혀를 차지는 않았을까. 이 두사람의 간극은 시작하는 아침과 저무는 아침처럼 극과 극을 이룬다.

어떻게든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들.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한 자기표현을 원하는 욕망도 높아진다. 하지만 대체되는 자신의 이미지는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지만 현실 속의 자신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표현에 앞서는 것은 현실의 자신을 가꾸는 것부터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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