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U보트 공격도 진주만 만큼이나 자주 영화로 나온다. 대서양 바다 밑을 숨어 다니면서 연합국의 함정을 깨뜨리는‘게르만 정신’은 늘 스릴과 감동을 안겨준다. 바다 게릴라들의 초인적인 정신력, 목표를 강타하고 격멸해 내는 군인정신, 그리고 독일제국과 동료를 위해 몸을 바치는 희생정신. U보트 드라마를 재미있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은 바로 진주만에서 이기고 U보트로 승승장구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망했다. 아니, 역설이라고 말해버리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패한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캐묻고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에 미친 군부의 판단이 만들어낸 영웅적이고 신화적인 스토리를 풀어헤쳐 교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 수뇌부가 진주만 공격을 극비리에 논의할 때 이에 반대하는 회의(懷疑)가 적지 않았다. 그 입안자인 해군제독도 처음에는‘전쟁이 2, 3년간 지루하게 계속되면 자신없다’고 고백했다. 미국의 잠재력을 알고 있는 문관들의 반대도 있었다. 반대하던 총리가 물러나고 문관들은 전쟁광이 된 군부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고 말았다.
당시 미국은 진주만을 기습당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에 나서기 어려웠다. 국민의 반 이상이 고립주의 지지였고, 의회에서는 1년짜리 징병법 연장도 겨우 한 표차로 통과되는 정도였다. 한마디로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는 딱 한가지 수단, 미국 영토 폭격이라는 이상한 도화선을 일본이 터뜨려 주었던 것이다.
일본은 진주만에서의 대승으로 미국의 사기를 완전히 꺾고 참전을 막는다는 이상한 독선과 오판으로 흘러갔다. 미국은 진주만 패배로 사기가 꺾이기는커녕 나라 전체가 똘똘 뭉쳐 일본타도에 나서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일본은 밀리고 밀리다 45년에 패망하고 말았다.
독일이 U보트 잠수함을 동원한 무제한 공격을 시작할 때도 내부에선 논란이 들끓었다. 군부와 영토확장론자 우익정당 그리고 대중은‘식량동결을 뚫고 독일이 살아 나가려면 잠수함으로 적들을 쳐부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려깊은 사람들은‘U보트를 앞세운 어뢰공격을 시작하면 미국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미국의 연합군 참전을 부르면 전쟁은 이길 수 없다’고 반대했다.
U보트는 끝내 발진하고 어뢰를 마구 쏘아댔다. 영화에 나오는 U보트들의 화려한 공격과 연합군의 참담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진 쪽은 독일이었다. 독일은 여덟 달이 못되어 항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독선과 아집의 결정은 더러 우연히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단기적으로 이기는 수가 있다.그러나 길게 보아 승리하는 경우란 드물다. 오히려 단기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적에게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준 것 때문에 길고 큰 전쟁에서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국가의 우두머리나 수뇌부가 독선과 아집, 그들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역시 역사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인지가 발달하고 과학이 진보해도 ‘정치는 3000∼4000년 전과 다를 바 없다’던 존 애덤스 미국 대통령의 탄식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그래서 정부에는 ‘위대한 질문자’가 필요하다던 마키아벨리의 주장도 아직 유효한 것이다. 군주나 정치지도자는 항상 위대한 질문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 놓고, 귀에 거슬리고 괴롭더라도, 밖으로부터 끈질기게 진실을 듣고 검증하는 자세여야 한다던 외침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바버라 터크먼의 명저 ‘독선과 아집의 역사’를 읽으며 생각한다. 이 시각, 우리는 이 땅의 ‘위대한 질문자’가 누구이며, 누구여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야 할 지위의 신문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국가 같은 잠재력도, 권력도 무력도 가진 게 없는 보잘것없는 신문이라는 존재의 상처입은 몰골을 돌아본다.
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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