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면 누구가 겪음직한 불쾌한 일들이다. 까짓 e메일이나 전화번호는 그럴수 있다고 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 주민번호를, 예금통장 번화나 카드 번호를 알아내서 악용한다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신상정보가 어딘가에 흘러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 책은 이 정도의 개인정보 유출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첨단기술에 의해 현대인의 사생활이 위협받는 실상은 실로 너무나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침대 속에 있을 때조차 결코 누군가의 감시와 통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심슨이 수 백명의 관련자를 취재한 결과는 놀라움 자체다. 도청이나 원격감시 같은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신용카드가 남기는 거래정보, 지문인식 등 신원확인을 위한 생체인식 시스템, 개인의 유전자 정보 등이 어떻게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개인을 옭죄려는지 알면 소름이 돋는다(이런 비판적인 책을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에서 번역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특히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가 복면을 쓰고 은밀하게만 자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종종 ‘공익’이나 ‘효용’의 얼굴을 내밀고 뻔뻔스럽게 자행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멀리 찾을 것도 없을 것이다. 지난해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등을 카드 하나로 통합한 전자주민증을 설파했던 정부 관리들을 떠올려보라. 이들을 향해 저자는 “미래에 ‘빅 브라더’가 출연한다면, 그는 탐욕스런 권력욕자일 뿐만 아니라 효율성의 망상에 사로잡힌 잔혹한 관료가 될 것이다”는 말을 전한다.
사시눈을 뜨고 보자치면, 저자의 근심이 ‘프라이버시’라는 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미국인들의 호들갑처럼 느껴질 것이다(과연 그러한가는 저자의 홈페이지 http://simson.net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생활 보호는 21세기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주장을 딴나라 이야기라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제 ‘The Death of Privacy in the 21st Century’(2000년)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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