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윤후명 소설 '가장 멀리 있는 나'

  • 입력 2001년 7월 20일 18시 36분


◇가장 멀리 있는 나 윤후명 소설 320쪽 8000원 문학과지성사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산모퉁이 길을 돌아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시처럼 말하는 그는 누구인가. 왜 외로운 산모퉁이 길을 돌아야 하고 왜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하는가. 윤후명의 신작 ‘가장 멀리 있는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복잡한 탐문으로 무늬지어 있다.

윤후명은 그 나름의 독특한 무늬와 스타일을 지닌 작가다. 그의 이야기는 대개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조에서 비롯된다. 그 소설의 기축은 낭만적 동경과 환상이다. 생성과 소멸로 점철된 인류 문명의 거대한 순환 과정을 그는 폐허의 안목으로 성찰한다. 그에게 폐허는 삶의 본질을 파악하는 핵심 기제다. 일찍부터 돈황이나 누란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것도 이런 사정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윤후명의 경우, 폐허를 바라보는 허무혼의 인식 공간은 광활한 대우주를 향해 넓게 펼쳐져 있다. 많은 작품에서 작가를 빼닮은 쓸쓸한 사내는 정처없이 홀로, 또는 약속할 수 없는 여인과 더불어 폐허를 찾아헤맨다. 폐허가 된 도시건 사라진 협궤열차건, ‘사라진’ 폐허의 흔적을 헤매며 ‘살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어쩔 수 없는 폐허의 유목민이다. 유목민의 현실과 몽상을 통해 그에게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길 위에서 살아간다. 혹은 살아진다. 그 길 위에서 폐허로 인해 넋을 앓고, 폐허의 환상으로 인해 넋을 잃는다. 폐허의 현대적 몽유록으로 보이는 윤후명의 소설은 대부분 폐허를 찾으러 떠나고 헤매는 길 위에서 인간의 본원적 영혼을 입증하려는 끊임없는 실험의 소산이다.

개인과 자아의 발견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고, ‘나’를 통해서만 우주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윤후명은 자기 식의 ‘나’소설을 써왔다. 이번 신작 또한 ‘나’를 찾기 위해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산모퉁이 길을 돌아”가는 이야기다. 나의 원류를 찾아서 그 물에 발을 담그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수록작 ‘외뿔 짐승’은 사라진 것들, 이를테면 수인선 협궤열차나 그를 떠나간 여인들의 흔적을 통해 사라지면서 살아지는 존재론을 성찰한 이야기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돌 속에 뜨는 무지개’의 이미지다. 돌이 부서져서 모래가 되고, 모래는 흙이 되었다가, 다시 굳어져서 바위가 된다. 거기에 사람들의 주검이 섞여 돌의 무늬와 빛깔을 이룬다. 기억의 에너지도 마땅히 섞인다. 기억이 생생할수록 무늬와 빛깔도 생생해지고, 그때 무지개처럼 돌에 어룽질 것이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의 삶과 소설이 ‘돌 속에 뜨는 무지개’를 성찰하려는 몽유록이 아니었던가 짐작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서 주인물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신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상상력을 겹쳐 놓으면서 작가는 아버지 찾기의 새로운 진경을 묘출한다. 그러면서 고국이나 고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방과 유랑과 도피 등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론적 현실을 웅숭깊게 탐문한다. 여기서 아버지 찾기란, 고향으로 돌아가기란 곧 자기 찾기의 일환이다. 하지만 거기서 주인물은 ‘가장 멀리 있는 나’를 확인할 뿐이다. 삶의 지독한 역설이고 폐허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되뇔 수밖에 없다. “돌 속에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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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문학비평가/ 서강대 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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