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 입력 2001년 7월 20일 18시 36분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376쪽 1만6000원/창작과비평▼

월러스틴의 대표작인 ‘근대세계체제’ 제1권의 첫머리는 “‘변화는 영원하다’ ‘변화하는 것은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문구 자체는 사회체제의 역사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도 잘 적용될 수 있다. 하루하루 짧은 시간대 속에서 삶의 변화를 느끼기란 힘들지만, 인생이라는 좀더 긴 시간대 속에서 삶은 파란만장한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그런데 삶의 변화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사회의 변화로 인해 초래된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인들이 얼마 전에 경험했던 IMF 시절은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도 만능의 열쇠처럼 떠받들고 있는 구조 조정 속에서 개인들의 운명은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희생양이 되거나 아니면 그 틈을 타 오히려 한몫을 잡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희생양이 되지 않고 한몫 잡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다수의 희생자를 내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사회 구조 그 차제인 것이다.

월러스틴은 인간들의 운명에 불평등하게 작용해 왔고 또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사회의 구조와 그 구조의 변화 즉 사회체제의 역사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 온 학자이다.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체제의 변화에 대해 다양한 주장을 해왔음에도, 그가 유독 주목을 받는 까닭은 그가 강조하는 사회체제라는 개념과 그것의 변화양상에 대한 설명이 다른 이들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체제이며, 그것은 16세기 유럽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확장돼 온 역사적으로 유일한 세계체제이고 사람의 일생처럼 탄생 성장 사멸하는 ‘역사적’ 사회체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과 국가들은 구조적으로 불평등하게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그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자본주의 비판은 기존의 자본주의 비판자들과 사뭇 다를 뿐더러 심지어 자본주의를 비판해온 여러 이데올로기들, 학문들, 그에 기반한 운동들 심지어 지금은 붕괴해 버린 현존 사회주의 체제들조차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대 세력이었지만 실상 그것을 떠받쳐주던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야말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승리가 아니라 거꾸로 그것의 몰락을 분명하게 예고하는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다양한 요인들의 결합으로 인해, 과거의 위기들과 다르게 현재 직면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향해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 체제의 붕괴는 필연적이지만 그 후에 등장하게 될 새로운 사회체제가 어떠한 모습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이런 그의 문제의식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명쾌한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제시된 것처럼, ‘세계의 종언’을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저서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1부는 책 제목의 일부처럼 현실 세계의 종언을, 즉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현재의 시점에서 붕괴의 국면으로 확실히 진입했음을 명시적으로 정리 종합하고 있다. 2부 또한 책 제목의 일부인 ‘우리가 알고 있는’이라는 문구가 함의하듯이, 현존 체제를 지탱해온 이데올로기들, 제도화된 학문들, 운동들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시도한다. 동시에 이 책의 부제인 ‘21세기를 위한 사회과학’이 암시하듯이, 변화에 합당한 새로운 이념과 학문 그리고 운동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낙관에 사로잡힌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대결과 학살, 환경 재앙으로 얼룩지고 있는 현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세계, 지역, 국민경제가 긴밀히 연결됨에 따라 한 지역의 위기가 곧바로 다른 지역의 위기 나아가 세계의 위기로 이어지는 현실 징후적 특성을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추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살 만한 세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상당한 실천적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김동택(성균관대 연구교수·정치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월러스틴은 '세게체제론'의 창시자로 국내 지식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잇다. 그의 '세계체제론'은 19,20세기의 서구 중심적 시각을 벗어나 16세기 이후 세계경제의 형성과정을 통해 세계화를 바라봐야 세계적 사회변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는 모든 사회분석은 역사적이며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1930년 미국 뉴욕 출생으로 1951년 컬럼비아대 졸업 후 이 대학에서 사회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58~71년 모교 교수, 1971~76년 캐나다 맥길대 교수를 거쳐 1976년부터 뉴욕주립대(빙엄튼) 석좌교수 및 페르낭 부로델 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1994~1996년에는 세계사회학회(JSA) 회장을 역임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