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좌에서 밀려나게 된 압두라만 와히드 전대통령은 2년 전 대통령에 선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슬람 종교지도자로서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1993년에 농민과 중소기업인을 위해 일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특히 서민층의 지지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몰락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 공금횡령과 기부금 착복 혐의라고 하니 꼭 집어 우리네와 비교하기는 뭣해도 뒷맛이 영 씁쓸하다.
▷필리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대통령은 요즘 군병원에 구금된 채 재판을 받고 있는 신세다. 그는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고 보석은 허용되지 않는 횡령과 부패 등의 혐의로 올 4월 구속됐다. 필리핀의 역대 지도자와는 달리 슬럼가에서 태어나 한때 영화배우로 인기를 끌었던 그는 빈민층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까지 올랐지만 결국 부패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인기주의)의 실패작’인 셈이다.
▷그뿐인가. ‘경제회복의 주역’으로 찬양받던 카를로스 메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여당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의 부패에 빈부 격차가 겹치면서 2년 전 야당에 정권을 넘겨준 데 이어 얼마 전에는 그 자신이 무기 밀매혐의로 기소됐다. 부패 스캔들이 폭로되자 지난해 10월 일본으로 도피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페루 정부의 거듭되는 신병 인도 요구에 굴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다. “부패는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명(名)재상이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한 말이다. 지금 이 나라에도 이 경구(警句)에 뜨끔할 양반들이 있을 터이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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