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전국 가구수의 절반 이상이 부담해야 할 적립금을 충분한 여론수렴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치금 부담 대상과 부담금〓서울 도봉구 창1동에서 32평 아파트에 사는 주부 김모씨(37)가 6월에 낸 아파트 관리비는 15만5700원. 그러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주거정비법)’안에 따라 적립금 약 4만원을 추가할 경우 아파트 관리비는 30% 이상 늘어난다.
적립금을 내야 하는 가구는 전국 약 1150만 가구(2000년 말 기준) 중 아파트 546만여 가구(47.5%)와 연립주택 83만여 가구(7.3%) 등 약 630만 가구에 육박하는 수준. 해당 주택의 소유주가 평형에 따라 매달 3만∼5만원을 내야 한다. 전국적으로는 한 해에 약 2조∼3조원에 이른다.
건교부는 적립금을 관리비에 포함시켜 거둬 입주자대표자 명의로 은행에 장기 예탁한 후 재건축 추진 및 공사비용으로만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적립금을 내지 않는 경우에는 ‘국세’ 징수 절차에 따라 연체료와 가압류 등을 통해 거둘 계획.
건교부는 일부 공동주택은 재건축 비용이 없어 슬럼화하거나 안전에 문제가 있는데도 재건축이 진행되지 않아 ‘주택 노후 보장금’으로 거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에는 분양 대금의 10%를 거둘 계획이었으나 너무 부담이 돼 매달 일정액을 거두기로 했다는 것.
▽무엇이 문제인가〓주택산업연구원의 김태섭 연구원은 “모든 공동주택을 재건축한다는 것을 전제로 적립금을 최장 20여년 전부터 거둔다는 것은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등을 통해 ‘주택 수명’이 연장되는 경우도 많은데 수십 년 후의 비용을 위해 적립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김 연구원은 “소유주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적립금만큼을 매매가격에 포함시켜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적립금이 매매가에 포함되는 경우에는 아파트 가격의 인상요인도 된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 등 공동주택 중에는 아직도 ‘수익성’ 있는 것들도 많은데 일률적으로 적립금을 징수할 필요가 있는지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아파트 단지별로 모아진 상당액의 적립금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쉽지 않은 과제다. 10∼20년씩 은행에 넣어두더라도 관리소홀 등으로 각종 횡령 유용사건이 우려된다.
또 수백만 가구가 관련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초적인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문제점. 주거정비법과 관련, 지난해 9월 한차례 공청회가 있었으나 ‘적립금 조항’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입법예고를 통해 일반에 처음 알려졌으며 심지어 언론에 처음 제공한 보도자료에는 설명조차 없었다.
선진국의 경우 아파트 등을 평균 50년 이상 사용하므로 재건축 부담이 크지 않으며 따라서 ‘재건축 예치금’과 같은 제도 역시 없는 실정이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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