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는 자신의 주체철학으로 북한 체제를 설계했다는 사람이다. 그런 황씨가 97년 2월 북쪽을 버리고 남쪽을 선택한 것은, 북한 체제가 자신의 신념과는 달리 김일성(金日成) 부자를 신격화한 ‘봉건왕조’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그 스스로 여러 차례 밝혔다. 한국에 온 뒤 북에 남은 황씨 부인은 자살하고 자식은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도 있고 보면, 신념을 위해 개인적 불행을 겪은 그가 안쓰럽기도 하다.
▷한국에 온 후 황씨는 저술활동 외에 ‘북한민주화운동’에도 나름대로 애써왔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자기네 ‘수령관’에 꿰맞춰 “인민은 하늘이고 수령은 인민의 어버이다. 고로 수령은 하느님의 스승이다”라고 주장하는 곳이 북한이다. 수령이 하느님의 스승이라고 강변하는 이 희한한 체제가 제거되어야만 전쟁도 막고 평화통일도 이룰 수 있다는 게 황씨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러나 북한 전체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기엔 북한 내부 역량이 너무 약하고, 그래서 남쪽을 기지 삼아 북한 민주화운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엊그제 한나라당 안영근(安泳根) 의원이 그런 황씨를 향해 ‘공주병 환자’라며 ‘차라리 북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일갈했다. 안 의원의 주장은 당론과는 다른 것이어서 ‘소신발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롱기 가득한 그의 발언은 국회의원이 한 말치고는 유치하다는 느낌이다. 자기 신념을 주장하는 노(老) 망명객에게 할 말은 아니다. 칼에 벤 상처보다 말로 다친 상처가 더 깊고 오래가는 법이다.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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