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제에 대한 연구는 모두 실천적 측면을 지향한다. 전자에 대한 관심은 에너지 자원 고갈과 지구온난화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하고, 후자에 대한 관심은 디지털 혁명, 유전자 혁명 그리고 단일화된 세계시장 속의 과학기술이 가져올 거대한 변화의 성격을 구명하려는 의도를 지니기 때문이다.
에너지 문제의 해결 방향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합의가 거의 이루어진 상태다. 기존의 지속불가능한 화석연료 대신 태양력, 풍력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에너지 고갈과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은 이미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의 에너지 문제 연구는 한국에서 에너지 시스템 전환이 하루빨리 시작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미 나는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라는 책을 내면서 핵에너지가 화석연료의 대안이 될 수 없고, 재생가능 에너지만이 대안이라는 것을 논증한 바 있다. 지금은 그 다음 단계로 한국에서 이용가능한 재생가능 에너지의 양이 얼마나 존재하고, 그 확대를 위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화석연료와 핵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에너지 자원 연구자들이 예측하듯 몇 년 후부터 산유량이 감소하고 유가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한국이 입게 될 타격은 꽤 심각할 것이다. 나의 연구는 이러한 상황이 닥치기 전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에너지 경로가 무엇인지 제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정보통신공학이나 생명공학이 인류문명을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로 인한 변화 자체에 대해서는 많은 학문적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변화를 일으키는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의 성격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의 관심은 바로 이들 과학기술의 특징을 포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생명공학이나 정보통신공학 같은 과학기술을 통제하고 그 발전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탐색하려는 것이다.
약간의 공부를 통해서 내 눈에 드러난 현대 과학기술의 주된 특징은 분산성, 네트워크형, 이론의 ‘약화’, 자본과의 밀착 등이다.
이 중에서 네트워크형과 자본과의 밀착은 세계화를 추동하면서도 세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분산성은 거대한 중앙집중적 과학기술에 대립하는 것이지만, 분산적 과학기술이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면 그것의 통제는 대단히 어려워진다.
나는 현대 과학기술을 통제하고 그 방향을 조종하려 한다면 이런 점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연구가 갖는 의미라면 그러한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필렬(방송통신대 교수·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