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순 토종 대하 판타지' 퇴마록 19권 완간

  • 입력 2001년 7월 29일 18시 36분


저자 이우혁
저자 이우혁
시공을 넘나들며 악령을 무찌르던 퇴마사(退魔師)들의 대장정이 드디어 끝이 났다. 소설 ‘퇴마록’(들녘)이 최근 제4부 ‘말세편’ 5, 6권 출간을 끝으로 완간된 것이다. 1994년 1권이 나온 다음 ‘말세편’까지 총 19권으로 피날네를 장식하기까지 7년 6개월이 걸렸다. 총 판매부수는 780만권.

작가 이우혁(36)씨는 이 작품으로 ‘한국형 판타지의 효시’ ‘본격 대중문학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란 이력이 그를 더욱 화제에 올려놓았다.

그동안 얼굴을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렸던 그가 집필을 마친 뒤 당당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소설이 중간에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고 대강 의도했던 대로 진행된 것 같다”는 그는 “하지만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놓고는 무척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 "주인공생사는 독자들 상상에"

박윤규 신부, 이현암, 현승희 등 주인공 퇴마사들의 생존을 불분명하게 처리해 독자 상상에 맡긴 것은 그같은 고민의 산물이었다.

“‘퇴마록’은 우리 전설이나 신화에서 소재를 찾은 한국형 판타지입니다. 특히 ‘도통(道通)’과 ‘팔자(八字)’라는 우리 말에서 우리만의 특징을 발견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귀신을 박멸하는 ‘퇴마’라는 개념은 일본에 가까운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우리의 경우 검술로 귀신을 물리치기보다는 얼르고 달래는 정서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것. ‘퇴마록’이 일본의 ‘요마록’이나 ‘음양사’ 같은 작품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한 이씨의 대답은 단호했다.

◆ 일본 책은 단 한권도 참고 안해"

“소설을 쓰면서 일본 책은 단 한권도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첫 영감은 미술사 관련 책을 보다가 악마를 물리치는 형상이 담긴 고대조각을 보고 얻은 것입니다.”

몇 해전 개봉한 영화 ‘퇴마록’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씨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 영화는 감독이 만든 ‘퇴마록’일 뿐이지 제가 쓴 ‘퇴마록’을 영화화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 이름과 제목 밖에 같은 것이 없습니다. ‘퇴마록’이 영화덕을 보기는 커녕 도리어 작품 이미지만 손상됐습니다.”

그는 “직접 영화를 만들지 않는 한 앞으로 절대 남의 손에 소설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퇴마록’은 이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대학원 졸업 후 자동자부품연구소를 다니던 그는 알려진 것과 달리 ‘퇴마록’이 성공한 이후 엔지니어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퇴직 후 두 번이나 벤처회사를 차렸다가 실패한 뒤 전업작가의 길을 택했던 것. 그 후 결혼을 했고 아이도 생겼다.

“책 인세만도 몇 억원은 족히 벌었겠다”고 농을 건네자 이씨는 “그 보다는 좀 많다”고 선선히 대답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벤처회사 창업자들인데 저도 사업을 계속했으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 관심사 다양…신작 준비중

이씨는 클래식 음악부터 영화와 게임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오지랖이 넓다. 대학때 연극반에서 10여편의 작품 창작에 참여했고 몇 해전에는 아마추어 오페라를 각색 연출하기도 했다.

80년대 초반부터 즐겼다는 게임도 수준급이어서 지금껏 모은 게임 타이틀이 수 천개에 이른다. ‘퇴마록’은 올해 출시를 목표로 게임으로 개발 중이다.

그가 다음에 집필할 작품은 ‘치우전기’. 기원전 2700년전 한반도에 살았던 주신족이 한족 등 다양한 종족과 4년에 걸쳐 벌였던 전쟁을 다룬 소설이라는 설명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퇴마록’은 4명의 퇴마사들이 악한 마귀들을 격퇴하는 내용이 옴니버스 식으로 전개된다. 스타일로는 무협지의 활극적 요소와 추리기법, 심리기법 등을 다각도로 활용한다.

전체 구성은 ‘국내편’(3권) ‘세계편’(4권) ‘혼세편’(6권) ‘말세편’(6권) 등 네부분으로 나뉜다. 앞 두 편은 시간을, 뒤 두 편은 공간을 넘나들며 악의 집단과 대결을 벌인다. 이번에 완간된 말세편은 ‘미래’의 문제를 다룬다. 정체를 숨기고 은둔하던 퇴마사들이 미래에 모습을 드러내 말세의 위기를 막는다는 내용.

‘퇴마록’은 고대종교, 밀교, 역사, 신화와 민담 등 방대한 역사자료를 탁월한 상상력으로 꾸민 것이 돋보인다. 역사 종교 자연과학 미술 등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은 ‘해설집’을 따로 낼 정도로 심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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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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