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관료출신 CEO “그때 잘할 걸…”

  • 입력 2001년 7월 30일 18시 19분


경영인으로 변신하는 경제관료가 늘고 있다. 사회변화에 맞춰 민간부문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는 자발적 선택도 적지 않다. 이영탁(李永鐸) KTB네트워크 회장 등 재경부 출신 경영인들로 구성된 ‘모네(MONET)’라는 친목단체까지 생겼다.

관료출신 경영자들을 만나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이야기를 한다. 민간기업에서 일하면서 과거 관료 시절에 기업 및 기업인을 본 시각과 태도에 대해 자성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후의 ‘희생양 찾기 수사’ 때 공직생활에 회의를 느껴 떠난 진영욱(陳永郁) 한화증권 사장. 관료재직 시 ‘외부인’들에게도 깍듯이 예의를 지켰다는 평을 듣는 진 사장이지만 “그때 인간적으로 잘못한 일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며 “되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재경부 차관보 출신인 이근경(李根京)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관계(官界)를 떠난 뒤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며 “특히 허리를 숙이는 것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현직 관료들은 어떨까. 당당하게 논리를 펴면서도, 겸허하게 민간인을 대하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만의 논리’에 함몰돼 기업인을 ‘졸(卒)’로 취급하면서 군림하려는 경우도 자주 눈에 띈다.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선결과제로 지적되는 30대 그룹 지정제도 개선 등 기업규제 완화 요구에 대한 일부 경제부처의 막무가내식 반대를 보자. 이런저런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다른 관련 부처에서조차 “경쟁력은 뒷전이고 조직 위상과 힘이 줄어들까 우려하는 ‘밥그릇 논리’가 바닥에 깔려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무원들은 먼저 공직을 떠난 ‘선배’들의 충고부터 귀담아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부지불식간에 생길 수 있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관료들이 민간을 향해 칼을 휘두를 때 사실은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잡은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권순활<경제부>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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