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비와 가로등

  • 입력 2001년 7월 30일 18시 30분


한밤중 집중호우 속에서 자동차를 몰았다. 도로는 온통 물바다였고 빠르게 움직이는 윈도 브러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살을 가르며 겨우겨우 앞으로 나가는 자동차는 곧 엔진이 꺼질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물 속에서 자동차가 서버리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 악전고투 끝에 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날 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 특히 물이 찬 도로에서가로등과 신호등의 누전으로 감전사 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지난밤 자동차 시동이 꺼져 물 속을 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할수록 끔찍했다. 한 회사원이 보름 전 겪었던 경험담이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도심 한가운데서 감전사라니. 그런데도 서울시와 경찰은 ‘책임회피’논쟁까지 벌였다. 이를 의식한 듯 이번 집중호우 속에서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아예 가로등을 켜지 않거나 중간에 끊어버렸다. 일부도로는 암흑천지로 변했고 운전자들은 어둠 속에서 갈팡질팡했다. 감전사고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지난번 집중호우 이후 관청은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이번 집중호우까지는 10여일간의 기간이 있었다. 이 기간동안 미리미리 노상전기시설의 안전을 총점검하고 필요한 곳에 누전차단기를 설치하는 등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서울시는 물론 점검반을 구성해 움직이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혹시라도 ‘비만 오면 가로등을 끄는 나라’라는 오명을 얻을까 걱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에도 하수구와 유수관로 등이 막혀 전국의 많은 곳이 물바다가 됐다. 인명 및 재산피해도 잇따랐다. 큰비가 올 때면 어김없이 겪는 일이다. 다시는 그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원적인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문을 하기에도 이젠 지쳤다. 호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책임있는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냥 하늘만 탓하고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만 넘긴다면 언제든 물난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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