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이야기]이름이 좋아야 회사가 뜬다?

  • 입력 2001년 7월 30일 18시 31분


옛날 한 유태인 마을에 나이가 들도록 글을 깨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도 쓰지 못했던 이 사람은 서명할 일이 있으면 지장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느날 무슨 서류엔가 서명을 하게 됐을 때 그는 늘 쓰던 엄지손가락이 아닌 검지손가락으로 지장을 찍었다.

친구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응, 오늘부터 이름을 바꿨거든.”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이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 또 하나. 한 회사원은 학생시절 여학생과 미팅을 할 때는 꼭 가명을 썼다고 회고했다. 좀 친해지면 본명을 털어놓았다는 것. 처음보는 여자에게 촌스러운 본명을 말하기가 쑥스러웠다는 것이다.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름이 갖는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개명(改名)을 하려는 것도 이름의 중요성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사명(社名)이 새로 시작한 사업과 어울리지 않으면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지난해 초까지는 ‘∼컴’ ‘∼테크’가 들어간 이름으로 변경하는 게 유행이었다.

올들어서도 코스닥의 개명 바람은 여전하다. 이미 22개 업체가 이름을 바꿨다. 인터리츠 씨비에프기술투자 옵셔널벤처스처럼 2년새 2차례나 상호를 변경한 업체도 10여개에 이른다.

이렇게 상호가 자주 바뀌다보니 정작 그 회사 주식을 산 투자자들조차도 헷갈릴 지경이다. 실제 신문사로는 사명이 바뀐 사실을 모른채 “주식시세표에서 내가 투자한 회사 이름이 빠졌다”고 항의를 해오는 일이 잦다.

최근들어 개명을 신청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법원에서 개명을 허가해준 이름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장매춘’ ‘김 치’ ‘나죽자’ ‘이무식’ ‘허방구’ ‘강도야’…. 원래 이름을 그대로 쓰기엔 왠지 사회생활이 고달파보인다.

상호를 변경한 코스닥 업체들 가운데는 이처럼 ‘원래 이름을 도저히 쓸 수 없어서’ 이름을 고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잦은 상호변경도 문제지만 투자자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새로운 이름들은 아무리 봐도 뭘 하는 회사인지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럴싸한 이름으로 회사를 포장하는데 신경쓸 틈이 있으면 사업에나 충실해주기를 투자자들은 원한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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