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복권과 행복지수

  • 입력 2001년 7월 31일 18시 28분


복권에 당첨돼 일약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는 아직 통계가 없지만 미국 한 신문의 취재 결과로는 1000만달러(약 130억원) 이상 복금을 탄 당첨자들의 절반 이상이 가장 먼저 자동차를 신형으로 바꾸었고 이어서 집을 새로 장만했으며 다음에 새 배우자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 잘 살던 부인과 갈등이 빚어져 복금보다 더 많은 위자료를 주면서까지 이혼한 경우도 있었다니 그런 이들의 인생에 복권은 어떤 의미인가.

▷1000만달러 이상의 복권에 당첨된 지 10년 이상 지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전보다 더 불행해졌다고 대답한 사람이 64%에 달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새삼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비슷하거나 더 행복해졌다는 나머지 36%는 거의 예외 없이 이전과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했거나 아니면 복금중 상당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한 사람들이었다. 복권의 어원 로토(lotto)가 의미하는 ‘행운’은 복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미국 복권의 역사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당첨자들이 아니었다. 18세기 중엽 미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익금으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대학을 만드는 일이었다. 예일 하버드 브라운 컬럼비아 같은 명문 대학들이 복권 사업에 힘입어 탄생했고 초기 운영자금의 대부분은 당첨자들이 희사한 복금으로 충당됐다는 사실에서 복권의 가장 큰 수혜자가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 종업원 김모씨가 국내 복권발행 사상 최대인 25억원의 복금에 당첨됐다고 한다. 연초에 본 토정비결에 ‘7월의 횡재’가 예고됐었다고 하지만 같은 내용의 예언을 받은 수많은 사람에게는 아직 소식이 없다. 그런 점에서 하늘의 선택이 토정비결에 근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김씨에게 남은 일은 하늘의 뜻에 맞게 복금을 사용함으로써 행복을 확대하는 일이다. 미국의 복권 역사에서 김씨는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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