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고전전문위원인 김경욱(金炅旭)씨가 공개한 이 문서는 정조가 당시 과거에서 장원을 차지한 고정봉(高廷鳳)에게 상과 함께 내린 뒤 그 집안에서 전해내려온 것으로 폭 50cm에 길이가 50m에 달한다.
이 안에는 시험을 치르게 된 사연과 시험 결과에 대한 평가, 시상내역이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정조는 1798년(정조 22년) ‘어정 대학연의(御定 大學衍義)’와 ‘연의보(衍義補)’ ‘어정 주자대전절약(御定 朱子大全節約)’을 저술한 후 호남지역 유생들에게 교정을 보라고 명하면서, 그들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직접 문제를 내서 과거를 실시했다. 정조는 교정 및 시험 내용에 흡족해 하면서 직접 내용을 평가해 관직과 상을 내렸다.
‘조선왕조실록’ 중 정조 22년 4월13일자 및 6월18일자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정조는 4월13일 당시 광주 목사(牧使)였던 서형수(徐瀅修)에게 명하여 호남의 이름 있는 유생들을 모아 정조가 직접 낸 문제로 과거를 치르고 자기 저서의 초고에 대한 교정을 하도록 명했다.
그리고는 6월18일 자신의 저서에 대한 교정 내용에 대단히 만족해하며 호남 유생들의 시험 내용을 직접 검토 평가했다고 실록에 기록 되어있다. 이어 정조는 그 결과에 따라 차등 있게 시상하라고 교지를 내렸다.
정조는 교지에서 “올려보낸 글들을 보니 뛰어난 구절과 훌륭한 작품이 많았다. 지금 이 재능을 살피고 장점을 비교하는 일은 곧 호남의 재능 있는 선비들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기회를 만들기 위함이다”라고 그 뜻을 밝히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시험은 시(詩), 부(賦), 전(箋), 의(義), 책(策) 등 다섯 가지 형식으로 나눠 3일에 걸쳐 실시됐다.이 문서에는 다섯 부문 각각에 대한 평가와 함께 결과를 종합해서 다시 장원급제부터 마지막까지 약 80명에 달하는 유생들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평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과거가 끝난 뒤 공동 장원급제를 한 고정봉과 임흥원(任興源)에게는 중앙에서 치르는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나머지 유생들에게도 참봉 등의 벼슬부터 붓과 종이 등의 상에 이르기까지 평가 결과에 따라 시상한 내역이 적혀 있다.
자료를 공개한 김씨는 박종민(朴宗民) 박종학(朴宗學) 등 이 시험에 응시했던 사람들에게 개인별로 내려진 정조의 교지 3종도 함께 공개했다.
전남대 김대현 교수(한문학)는 “이 문서는 임진왜란 이후 ‘학문은 경상, 문학 예술은 호남’이라는 일반적 평가와 달리 당시 호남지역 유생들의 학문적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면서 “아울러 당시 호남에 대한 정조의 각별한 관심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