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DJ정권의 정체불명 정책

  • 입력 2001년 8월 1일 18시 27분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낡은 사회주의 및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민주당에서는 ‘사회주의와 사회복지정책도 구분하지 못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보아 현 정부의 정책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한나라당은 주로 현 정부의 지나친 경제개입과 과도한 평등주의의 추구를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관치(官治)경제가 문제라면 과거 개발시대의 우리 경제정책은 모두 사회주의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나친 평등주의의 추구도 사회주의보다는 포퓰리즘 차원에서 문제삼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필자가 보건대 정책의 ‘내용’ 면에서 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와 관치경제, 그리고 포퓰리즘이 혼재된 ‘정체불명의 정권’이다. 이 중 포퓰리즘적 성격은 현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스타일’ 때문에 더욱 강화되고 있다.

현 정부는 두 가지 어려움을 지니고 태어났다. 하나는 환란에서 비롯된 경제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파 정부라는 점이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현 정부는 집권 초부터 재벌, 금융, 공공, 노동의 4대 부문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난 현재 개혁의 성과는 그다지 크지 못하다. 부채비율 제한과 출자 제한을 강조한 기업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수의 상장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형편에 있다.

엄청난 공적 자금을 두 차례나 퍼부은 금융 구조조정은 신(新)관치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공공부문 개혁도 정부조직법을 세 번이나 고쳤지만 정부 조직은 오히려 더 비대해졌고, 공기업 구조조정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동부문 구조조정의 경우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약간 확보됐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실업문제와 주요 부문에서의 강력한 노조의 저항은 여전히 정부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상태에서 현 정부의 개혁정책은 좌우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다. 우측, 즉 시장지상주의를 선호하는 자본측에서는 정부가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지 않는 점을 불만스러워 한다. 그들이 볼 때 정부가 추진한 빅딜이나 기업에 대한 노동자 정리해고 자제 압력, 출자 제한, 부채비율 제한 등은 모두 시장의 원칙에 어긋나는 관치경제의 표본이다.

반면에 좌측, 즉 사회운동세력은 정부가 재벌은 빨리 혁파하지 않으면서 구조조정의 모든 부담을 기층민중에게 전가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사회안전망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부문에 대한 구조조정만을 강행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현 정부의 개혁정책은 성과도 제대로 내지 못한 상태에서 우측에서는 과소시장으로, 그리고 좌측에서는 과잉시장으로 비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정권에 대한 지지는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통적 지지기반인 서민층 마저 등을 돌리자 정부는 그들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을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국민연금 확대, 의약분업, 주5일제 근무, 교원사기 진작방안, 각종 감세정책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하나같이 졸속 추진되는 바람에 국민불편을 가중시켜 오히려 국민적 반발을 부르고 말았으며, 경제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더구나 현 정부는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 내에서의 토론과 협상에 기대기보다는 원외의 외곽세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정책 추진 스타일 역시 현 정부의 성격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현 정부는 소수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원내에서의 리더십 확립과 협상능력 제고에서 찾았어야 했다. 이러한 정도(正道)를 포기하고 섣불리 원외세력에 기댐으로써 현 정부는 사회복지적 차원에서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의 가장 큰 패착(敗着)은 신자유주의와 관치경제 그리고 포퓰리즘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국가의 장래를 위해 일관성을 회복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일영(성균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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