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잉카 멸망 이후 그 후예들이 세운 비밀도시로 추정될 뿐이다. 마추픽추 만큼이나 잉카제국의 문명과 흥망은 기이하다. 잉카는 12세기부터 안데스산맥 원주민들의 나라로 커갔다. 15세기말에는 지금의 페루 전지역과 칠레 에콰도르에 걸치는 인구 1200만명의 대제국이 되었다. 해안을 따라 3600㎞에 이르는 도로를 개척하고, 안데스산맥을 따라 비슷한 길이의 도로를 또 낼 정도의 나라였다.
▷잉카에는 말이나 바퀴 달린 수송수단이 없었다. 사람이 도로 위를 내달려 공무 정보를 전하고 군사 물자를 날랐다. 하루 약 240㎞의 전달속도였다고 한다. 그 파발꾼들은 ‘퀴푸’라고 하는 결승(結繩)문자를 들고 릴레이식으로 내달려 잉카황제의 명을 전달하고 정보를 소통했다. 잉카인들은 문자를 갖지 못해 매듭진 끈을 이용해 일상사를 기록했다. 퀴푸의 길이, 매듭수, 색깔의 차이로 인구통계나 법률, 금의 매장량 등을 후세에 전했다.
▷잉카의 금 세공기술은 뛰어났다. 잉카 무덤에서는 숱한 금 공예품이 나왔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자들이 약탈해 대부분 녹여 없애버렸다. 1535년 소수의 스페인 군대가 정복해버린 잉카, 460여년 만에 그 원주민의 피를 이은 톨레도씨가 마침내 페루의 통치자가 되었다. 잉카제국은 언젠가 유럽 총포의 위력에 견디지 못하고 정복당할 운명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왕권 다툼과 내분이 거대제국의 멸망을 재촉했던 것이다. 파워게임에만 매달리는 암투와 국력소모는 동서고금을 통해 ‘패망 촉진제’인 것이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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