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화려한 궁전 내부도 볼만 하지만 꿈틀이부부는 슈퍼에 가서 샌드위치와 과일 등 먹을것을 싸가지고 가서 궁전 뒤에 드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정원으로 들어가 피크닉을 즐겼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워낙 유명세를 타는지라 그 인파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밀려 밀려 눈으로 구경했는지 발로 구경했는지도 모르게 궁전 복도를 지나온 지친 다리를 햇빛과 바람과 숲의 향기를 맡으며 쉬어 갈 수 있답니다. 부부는 동상이몽,설마담과홍대리는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서두 말이죠.
[설마담의 일기]
"왠지 낯설지 않어..."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사진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그 병이 도진 것이라고 보기에는 그 장면들이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특히 궁전 뒤에 드넓게 펼쳐진 정원! 오호라, 여기로 먹을것을 싸 들고가서 우아하게 피크닉을 즐기며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봐야겠다. '베르사이유에서의 피크닉'이라...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 있을까?
백화점 지하 슈퍼에 가서 최대한 프랑스의 향기가 나는 음식들을 준비했다.
1. 프랑스에 왔다면 빼놓을 수 없는 길다란 바게트 빵
2. 품위있는 식사를 완성시키는 치즈 한조각-우리나라에서 못먹어본 푸른곰팡이 양젖치즈.
3.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에서 생산된 오렌지로 즙을 낸 100% 오렌지 주스
4. 과일 중에서도 빨갛고 앙증맞은 체리,
5. 만들어놓은 샐러드-이왕이면 프렌치 드레싱이 있는 샐러드를 사려고 했으나 옆에서 걸기적거리는 홍대리가 뭔가 씹히는게 한개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별수 없이 맛살이 들어간 사우전드 아일런드 드레싱을 얹은 것을 산게 오늘의 품위를 약간 떨어뜨릴까 걱정이다. 저남자는 분명 마당 쓸던 자였음이 분명해.
6.디저트로는 홍대리가 사자고 주장한 슈크림이 듬뿍 들어가있는 '파리의 가슴'이라는 케익. 이름이 지극히 불손하지만 오늘의 풀코스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디저트가 필요해서 용납.
등나무로 짠 이쁜 피크닉바구니를 미리 준비못한 것이 안타깝다. 이왕이면 파리지엔느 느낌이 나도록 종이 봉투에 바게트빵의 끝이 뾰족 보이도록 포장해 주면 좋으련만,아쉽게도 그 슈퍼에는 비닐봉지밖에 없는거다. 낭만도 모르는 아랫것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눈앞에 펼쳐진 정원은 확실히 낯설지 않은 그 느낌. 푸르게 펼쳐진 아름다운 잔디밭에 미리 준비해간 천을 깔고 음식을 펼쳤다. 부드럽게 내비추는 햇살,살랑거리며 머리카락을 간지르는 여름 바람,싱그러운 숲의 향기... 정원 곳곳의 조각들은 몇백년의 세월에도 잊지 않고 그 옛날의 주인을 반겨주는 듯 했다. 전채 샐러드로 시작한 오늘의 풀코스는 치즈와 체리로 마감되면서 그날의 분위기와 조화되는 파리의 한끼를 제공했다. 평화롭고 눈부신 오후는 완벽했다. 나는 현재의 나를 잊고 몇백년전의 추억으로 빠져 들어갔다.
[홍대리의 일기]
'전생의 기억을 찾겠다'는 설마담의 어처구니 없고도 허무맹랑한 주장에 파리에 도착하자 마자 허겁지겁 베르사이유 궁전을 찾았다. 미처 점심을 먹기전이라 허기진 상태에서 궁전을 구경하기가 어려워서 밥값도 아낄겸 슈퍼마켓에 들러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가기로 했다.
설마담이 평소와는 다르게 앞장서서 열심히 뭔가를 바구니에 담아 계산대에 올리길래 멍하니 '뭘 샀는가?' 쳐다보니 말그대로 '피크닉 재료'들이었다. 무슨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베르사이유 궁전으로의 피크닉'이라니! 차라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의 궁상'이라고 하지...
그녀가 준비한 것은?
1. 프랑스사람이라면 에펠탑이 무너지더라도 하루에 한번은 먹어줘야하는 야구방망이같이 생긴 바게트빵
2. 산양의 젖으로 만들었다는 푸른 곰팡이 치즈- 열어보는 순간 화를 내며 바로 버리려고 했는데 원래 그런 거란다. *^^*
3. 가격 꼼꼼히 비교해보고 제일 싼걸로 고른 오렌지 주스
4. 먹음직스럽지만 배는 안차 보이는 빨간 체리 한 봉지
5. 박박 우겨서 겨우 건져낸 계란과 맛살(홍대리 선호품)이 들어있는 야채 샐러드
6. 마지막으로 단지 이름이 맘에 들어 덜렁 고른 '파리의 가슴'이라는 케익
이런 피크닉 재료들을 비닐봉지 2개에 나눠담아 덜래덜래 베르사이유 안에서 들고다니다가 인적이 뜸한 정원(베르사이유는 화장실이 없어서 정원이라기 보다 공공화장실로 많이 이용되는 곳-_-;;)에 설마담이 이불,시트,치마,급할땐 수건으로 활용하는 태국에서 산 싸롱을 넓게 펴고 야금야금 주워 먹기 시작했다.
설마담은 맛도 모르고 완전히 분위기에 취해 나가떨어져 있다. 저여자 병도 병도 너무 심각해... 하지만 나는 맛을 평가하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해서 평가에 들어갔다.
1. 딱딱한 재질의 바게트 빵은 처음에 먹을때는 입천장을 자꾸 긁어서 매우 불쾌하지만 입에 넣고 꼬물락꼬물락 씹으면 바게트 특유의 고소함이 살아난다.
2. 푸른 곰팡이 치즈(로크포트Roquefort)는 음... 한국사람에게는 낯설다고 표현해야할 짭잘한 맛인데 결국 끝까지 먹지 못하고 버렸다.
3. 오렌지 쥬스는 가장 싼 제품을 샀지만 역시 우리 비타민C를 책임지는 보고
4. 체리는 스페인에서 먹었던 것 보다 조금 싱거운 맛이었지만 그래도 상큼한 과일- 스페인의 강렬한 햇볕때문에 스페인 체리가 더 맛이 좋은 듯
5. 사우전 아일런드 드래싱(마요네즈,케찹 버무린것과 가장 흡사한)을 뿌린 맛살 샐러드는 배가 꽉차는 포만감을 안겨주고
6. '파리의 가슴'이란 슈크림 케익은 역시 이름값을 했다. 차가운 슈크림과 바삭거리는 빵의 환상적인 조화에 2개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에 눈물을 흘린 제품
가끔 지나다니는 관광객들의 따가운 눈총- '거리의 노숙자들인가? 왜 저기서 저러고 먹고 있지?'을 받긴 했지만 어쨌던 뜨뜻한 햇살 아래서 배부르게 먹고 나니 이 정원도 조금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지 낯설지 않은 느낌?
☞ 어디서 먹나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의 피크닉]파리 근교에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파리에서 교외선으로 1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하루코스로 피크닉가기 그만이죠.
넓은 베르사이유 궁전과 정원에는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없답니다.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은 있었지만요.) 아름다운 정원을 배 든든하게 맘껏 즐길 수 있으려면 파리에서 출발전 미리 음식을 싸가는게 제일이겠죠? 이왕이면 배낭에 싸간 고추장이니 참치캔이니 그런것보다 슈퍼에서 샌드위치재료와 과일을 준비해가면 싸고도 맛있는 피크닉을 즐길수 있습니다.
궁전은 입장료가 있지만 정원 입장은 무료이니 궁전은 밖에서만 쉬익 보고 정원에서 자전거도 타고,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낮잠을 자도 좋구요.
주의할 점 : 베르사이유 궁전과 정원에선 화장실을 찾기가 아주아주 어렵습니다. 궁전 오른쪽 입장하는 곳 옆에 한개가 있고, 정원 어딘가에 또하나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잔디밭을 화장실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잔디밭에 덜썩 앉기 전에 아래를 반드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전생에 베르사이유 궁전을 드나들던 말 한쌍이었을 꿈틀이부부 tjdaks@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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