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간에게 향락은 무엇인가 '향락의 전이'

  • 입력 2001년 8월 3일 18시 38분


◆ '향락의 전이'/슬라보이 지젝 지음 이만우 옮김/424쪽 1만5000원 인간사랑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철학적 문제를 다음 네 가지 질문으로 요약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넷째, 인간이란 무엇인가?

처음 세 가지는 각각 형이상학, 윤리학, 종교적 물음에 상응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같이 ‘골치 아프고 쓸데없어 보이는’ 세가지 철학적 질문들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비교적 ‘친근한’ 물음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하늘 위에서 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철학자들의 관심사도 결국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정신분석학은 태초부터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 온 저 물음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향락의 전이’라는 제목에서 벌써 드러나듯이 라캉과 지젝에게 인간은 ‘향유(향락, jouissance)하는 존재’다. 향유란 무엇인가? 향유는 쾌락과 다르다. 흔히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이는 옳지 않다. 쾌락은 쾌락 자체를 파괴하는 고통 앞에 무력하다. 쾌락을 즐기면 처벌 받게 되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사람들은 대개 쾌락을 포기할 것이다. 쾌락의 반대말은 불쾌가 아니라 고통이다. 우리는 지금 쾌락을 즐기기 원하지만 필요에 따라 이 쾌락을 후일로 보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나중에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지금 도서관에서 공부해야 하는 ‘불쾌’를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불쾌는 쾌락 원리, 쾌락의 경제학에 속하지만 고통은 ‘쾌락-불쾌의 경제학’ 그 자체를 파괴한다. 고통은 ‘쾌락 원리를 넘어서는 것’(프로이트)이다. 인간이 ‘향유하는 존재라는 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닌 고통과 어우러진 쾌락, ‘고통 속의 쾌락’을 즐기는 존재라는 의미다. 인간은 이러한 향유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다.

‘야수들의 밤’이라는 영화에서 에이즈에 걸린 애인과의 사랑을 기꺼이 수락하는 여성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블루 벨벳’의 이사벨라 롯셀리니 같이, 자신의 몸을 사디스트의 학대에 맡기고 고통받는 마조히스트가 단순히 ‘병자’가 아닌 ‘숭고한 대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젝은 서론에서 학살당하는 포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향유 형태에 대해 말한다. 불안, 두려움, 무관심, 매혹….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답게 슬라보이 지젝은 또한 ‘정치적 향유’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찢겨진 아동의 몸, 강간당한 여인, 굶어죽은 죄수….

이런 장면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서방 기자들의 향유로부터 시작해 바이닝어의 남성 쇼비니스트적인 음험한 향유, 히치콕의 ‘새’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의 초자아의 향유’, 그리고 ‘여성적 향유’라는 가장 숭고한 형태의 향유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여성적 향유와 정치적 문제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라캉 정신분석학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라는 잘못된 이원론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다름 아닌 향유(향락)라는 전제하에 논의를 진행해 나간다. 지젝은 라캉 정신분석학 이론에 충실하면서도 독창적이고 ‘재미있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이미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독자들은 지젝의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비밀인 향유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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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기(경희대 강사·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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