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레바논 15번 Khatib을 아시나요

  • 입력 2001년 8월 5일 17시 51분


오늘은 가벼운 이야기 한 가지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남자 농구 대표팀이 상하이에서 곤욕을 치렀습니다. 바로 세계 선수권 대회 출전을 위한 예선전을 겸했던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4강에서 탈락한 것 말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의 4강전 상대였던 레바논은 우리 나라 국민들에게, 그리고 당시 주관 방송을 맡고 있던 SBS 및 대부분의 언론에게조차도 잘 알려진 팀이 아니라 그 강도는 더욱 심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레바논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약팀이었을까요?

세계 축구의 꽃은 역시 유럽 축구입니다. 그 리그의 활성도나 팬들의 열기, 선수들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 각 리그의 챔피언들이 모여서 ‘전쟁’을 벌이는 챔피언스 리그는 그야말로 ‘Best of the Best’를 가리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입니다. 그 대회의 우승은 곧 소속팀이 속해있는 리그의 우수성 및 그 나라의 실력까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농구에도 그런 비슷한 대회가 있습니다. NBA말고 말입니다. 유럽에 유로 리그가 있고, 아시아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 대회가 있습니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세계 클럽 챔피언쉽인 ‘맥도날드 오픈’(물론 이 대화는 NBA 우승팀이 참가한 이래 단 한 번도 우승팀이 미국 이외에서 나온 적이 없습니다만)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99 맥도날드 오픈에 참가했던 아시아 대표가 바로 레바논의 C.S. Sagesse입니다.

Sagesse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1997-98, 98-99, 99-00, 00-01 시즌동안 레바논 리그에서 연속으로 우승했으며, 1999년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중국의 Lioning Hunters-현재 중국의 대표팀 백 코트인 Li Xiaoyong과 Guo Shiqiang를 보유한 팀-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아시아의 몇 안 되는 슈퍼 클럽 중 한 팀입니다. 당연히 현재 레바논 대표팀은 이 Sagesse를 중심으로 짜여 있으며, 이번 한국과의 경기에서 뛰었던 Fadi El Khatib나 Joseph William Vogel, Richard Hallett의 선수들은 모두 Sagesse 팀 소속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Fadi El Khatib는 한국 농구팬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아랍 농구의 수준을 뛰어 넘는 명실상부한 아랍권 최고의 ACE입니다. 하자만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농구 관계자들이나 언론들은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것 같았습니다.

Fadi El Khatib는 그냥 그저 그런 레바논 팀의 15번 선수가 아닙니다. 소속팀이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에서 우승했던 Lioning Hunters와의 결승전에도 맹활약을 펼쳐서 챔피언쉽 MVP를 차지했고, 그 이후 참가한 맥도날드 오픈에서도 유럽의 강 팀을 상대로 굴하지 않고 18점이나 넣었으며, 해마다 열리는 아랍 선수권 대회에서도 타 팀들의 경계 대상 1번으로 뽑히는 선수입니다. 아랍 농구 역사상 All-Asia Team에 뽑힌 첫번째 선수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입지전적인 선수이기도 합니다.

196cm 96kg의 육중한 몸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에선 SG-SF-PF를 넘나드는 주 득점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사실상 Sagesse 및 레바논 농구를 이끌어온 22살의 젊은 에이스 플레이어인 Fadi El Khatib는 레바논 아니 중동 농구가 만들어낸 최근 10여년 간의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부를만한 선수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나라와의 준결승에서도 팀 내 가장 많은 24개의 슈팅을 던져서 무려 24점을 넣었고, 리바운드와 스틸도 각각 7개와 3개씩 해내는 All-around한 플레이를 펼쳐서 한국 팀 관계자들을 공황 상태로 몰고 간 장본인입니다. 만일 마지막 4쿼터에만 11점을 몰아 넣었고, 경기 막판 중요한 자유투를 성공시킨 Khatib가 없었더라면-물론 역사에 가정을 필요없는 것입니다만- 한국이 예전처럼 4쿼터에 경기를 역전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만큼 Khatib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농구 관계자들이나 언론 종사자들은 이런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을까요? Khatib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레바논 농구가 경기 전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Our game plan was to force them to dribble, stop and shoot,’’ said Neumann. “Then we made them go to the middle because we felt we were bigger and stronger.’’

레바논 감독이었던 Meumann의 한국과의 경기 후 인터뷰입니다. 경기 전 이미 레바논은 한국 팀의 약점이었던 ‘높이’와 ‘PG의 부재’를 알고 경기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은 레바논과의 경기를 단순하게 대 중국전을 위한 Warm-Up의 개념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미 예선에서 큰 점수차로 이겼던 팀의 에이스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개인 능력으로는 아시아 최고 레벨인 대만의 ‘Dragon Chen’-대만의 슈퍼 에이스 플레이-처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190cm의 추승균을 대 Khatib용 선수로 기용했으며 Khatib는 현란한 볼 핸들링과 파워 넘치는 포스트 업 공격으로 한국팀의 견고한 수비에 금이 가게 만들었습니다. 신장-파워-기술 모든 면에서 SF로 출전한 Khatib를 막을만한 선수가 한국팀 내에선 없었던 것입니다.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국은 레바논을 알지 못했고, 레바논은 한국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충격적인 결승 진출 실패는 곧 세계 농구 조류와의 괴리를 뜻합니다. 이번 패배는 단순히 3위를 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농구 선수들이 세계 선수권에 나가서 좀 더 경쟁력 있는 농구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는 것이 더욱 더 큰 문제점인 것입니다. 아마도 1981년부터 1997년까지 아시아 내에서 3위 이내에 한 번도 들지 못하다 최근에 들어서 97년 쿠웨이트의 3위, 그리고 이번 2001년 레바논이 2위를 하면서 상승세인 중동 농구는 앞으로 더욱 더 강해질 것입니다. 실제로 중동의 많은 선수들이 미국 NCAA 진출을 준비하고 있으며, 특히 Qatar의 Yaseen Mahmoud 경우 어린 나이와 높은 신장, 탁월한 운동 능력 및 타고난 센스 덕분에 중국의 Yao와 함께 미국 스카우터들의 영입 대상 1위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날이 세계 농구의 흐름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으며 이제 농구는 단순히 미국인의 것만이 아닙니다. 그 점은 아시아 농구 특히 아시아 농구의 변방이라 불리던 중동 농구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 남자 농구는 중국 이외의 팀에는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중국 이외의 팀과 상대할 때는 상대팀에 대한 분석이나 전술 준비 등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특히 협회의 경우, 조금만 노력하면 상대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에도 빈 손으로 임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레바논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중국은 이번 대회에 대해 어떻게 임했을까요? 세계 선수권 4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중국은 이미 대표팀 선수들을 미국 및 유럽 원정을 보낸 바 있습니다. 당연히 이번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의 목표는 한국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하는 중국조차도 ‘한국 따위’와 경기를 펼치는데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국은 어땠습니까? 제대로 된 최선의 멤버도 보내지 못했고, 상대방에 대한 파악도 전혀 하지 못했으며, 충실한 훈련도 하지 못한 채 단순히 이번에는 중국을 이길 수 있다는 환상만 가지고 대회에 임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선 장신 유망주들의 적극 기용 등의 이번 대회에 대한 대책들이 농구 팬들 사이에서‘만’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더욱 중요한 것은 세계 농구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사막에서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지 못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통이 몇 개인지, 타고 있는 낙타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면서 사막 횡단을 시도한다면, 그 여행자는 사막에서 한 줌 모래로 돌아갈 것입니다. 자신 대신 젊은 여행자를 횡단시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막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그런 시도 자체는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세계 농구 및 아시아 농구에 대한 파악 없이 한국 남자 농구의 미래는 없습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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