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단절과 연속

  • 입력 2001년 8월 5일 17시 51분


출범 20년의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에서 ‘해태 타이거즈’란 이름이 주는 중량감은 남다른 것이었다. 단 14명의 선수로 시작했던 소수정예의 이 팀은 이후의 역사에서 神話와 傳說로 자리매김할만한 강렬한 인상과 기억을 남겨주었다. 레드와 블랙의 선연한 색채 대비로 인상지워지는 그들의 강인함은 80년대를 관통해 90년대까지 이어졌다. ‘90년대의 팀’이고자 했던 이글스와 트윈스, 유니콘스가 벗어나기엔 ‘絶代强者’ 타이거스가 드리운 그림자가 너무도 짙었으리라.. 16시즌만에 이룩한 9차례의 챔피언쉽은, 그들의 자취를 KBO의 야구연감에서나 찾을 수 있을만한 1세기 후의 야구사에서도 불가사의한 업적으로 남을만한 기록들이다.

7월의 마지막 주말,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무등경기장을 찾았다. 97년 11월, 모기업인 해태 제과의 부도이후의 경영난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전설의 천년왕국의 쇠락을 가져왔다. 그리고 호남의 야구팬들에게 하나의 기업, 지역 연고의 야구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던 이 팀의 물리적 시한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끔 만들었다. 마지막 시합의 파트너로 ‘제 2의 고향’ 광주를 찾은 김응용 감독의 감회도 남다른 것이었으리라..

야구단의 매각과 인수, 연고지 이전은 우리 야구팬들에게 그다지 낯선 광경은 아니다. 베어스는 원년 출범 당시의 합의대로 85시즌을 앞두고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다. 모기업의 부도로 타이거즈가 쇠락한 이후 최강팀으로 자리잡은 유니콘스의 유니폼은, 원년부터 응원해온 경인지역의 팬들이 지켜본 4번째의 유니폼이다. 인수과정에서 많은 진통을 보였던 와이번스의 경우도 ‘쌍방울 레이더스의 퇴출’ - ‘연고지 이전을 통한 SK와이번스의 창단’ 이라는 ‘단절’의 통과의례를 치루어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야구단을 인수한 ‘신규 사업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로운 모습으로 치장하고 새 출발을 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야구단의 인수는 일반 사업체의 경우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의 프로야구는 아직까지 -적어도 정서 상으로는- 철저하게 ‘地域’이라는 화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진출자들의 심한 텃세에 못 이겨 ‘현대 피닉스’라는 실업야구단까지 창단해서 선수 사재기를 하는 몽니를 부리고서야 진입장벽을 넘을 수 있었던 유니콘스는, 서울과 경기도를 넘나들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뜨내기 팀의 모습을 벗지 못하고 있다. 타이거즈를 인수할 새 주인이 결정되기까지 이토록 오랜 세월이 걸린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치 않다. 우리 현대사에서 호남지역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질곡의 세월과 애환, 그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란 이름이 가지는 무게와 상징성이 아니었다면, 우리 야구팬들은 광주를 떠나 새롭게 창단된 낯선 명칭의 야구단의 탄생을 목격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시합’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3년만의 1만 관중’들이 보여준 응원열기는 페넌트레이스의 그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것이었다. 양 팀의 사령탑에 앉은 신화창조의 주인공들의 남다른 감회와 관계없이 승부는 승부대로 치열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결국 삼성의 재역전승으로 마무리 지어진 시합이 끝나고 계속된 고별행사에서, 관중들의 열띤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갔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나온 선수단과 프런트에게 열렬한 환호성을 보내던 관중들은 적장이 되어 광주를 찾은 ‘김.응.용’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김감독은 물론 그라운드에 나타나지 않았다. 삼성선수단이 철수하고 난 후에도 계속 김.응.용을 연호하고 있는 팬들에게, 지난 19년의 세월과 오늘의 타이거즈의 모습은 단절이 아닌 연속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타이거즈의 모습 또한 단절이 아닌 연속과 승계의 모습일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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