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어떻게/對美 불만 여파 소강 불가피▼
‘북-러 공동선언’이 남북관계에 그다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당국자는 “북-러 공동선언에 나타난 6·15공동선언에 대한 평가는 남북한간 합의를 존중하고 남북대화를 지지하겠다는 뜻”이라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장기간 해외여행 자체도 북한의 변화모색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공동선언 각론에서도 이 같은 긍정적인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6항에 나타난 남북한과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수송로 창설계획에 대한 ‘본격 실현단계 진입’ 선언은 경의선 연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연결하려면 북-러 협력은 물론 남북한간 경의선 복원 노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5항에 나타난 “전력 및 경협분야에서 러시아측이 ‘북한의 이해’ 아래서 외부 재정원천을 끌어들인다”는 부분도 남북관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관측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당분간 소강국면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몇 가지 실무적인 협력 사안을 제외한다면 △북한 미사일계획의 평화적 성격 강조 △주한미군 철수 △통일문제 해결에 있어 외부 방해 불허 등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를 겨냥한 듯한 북한측의 불만이 짙게 읽혀지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가 이번 김 위원장의 방러를 통해 동북아 및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 기도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문제에 개입·간섭하려는 ‘주체’들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으로선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어서 장기적으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주한미군 철수/무기 감축 요구에 정면 대응▼
북-러 공동선언 제8항에서 북한은 “미군철수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서 미룰 수 없는 초미의 문제”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정부 당국자는 5일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특별히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러시아도 북한이 이 문제를 제기하자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입장에 이해를 표명한다’고만 했을 뿐 특별히 강세를 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난해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주한미군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 왔고 러시아도 주한미군은 ‘한미간의 문제’라며 한발 물러선 듯한 느낌을 주어 왔기 때문에 단순히 ‘상투적인 언급’이라고 무시해버리기는 어렵다.
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고 말해 왔다. 따라서 북-러 공동선언에 나타난 미군 철수문제는 김 대통령의 설명과도 일견 배치되는 것.
전문가들은 북-러가 공동성명에 ‘미군 철수’ 항목을 집어넣으면서도 ‘동북아 평화와 안전보장’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는데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북-미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상황과 미군문제를 연관지어 놓았다는 것이다.
서동만(徐東晩·상지대) 교수는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미군 철수 거론은 미국이 북-미대화의 의제로 제시한 재래식무기 문제에 대해 정면 대응이자 새로운 대미 협상용 카드의제시”라고 말했다.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그가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주한미군 문제가 변명거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약속을 지킬 경우에도 주한미군의 존재는 그의 답방을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터이므로 이를 공동성명에다 미리 언급해 놓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北-美관계 앞날/미사일 발사유예는 긍정적▼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대화가 중단된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러 양국은 공동선언에서 북한의 미사일 계획이 평화적 목적을 띠고 있으며, 72년 미국과 구소련이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은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 이는 북한 등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를 명분으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추진하고 이를 위해 ABM협정도 파기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대목이다.
부시 대통령이 대북정책 검토를 마친 뒤 6월에 제기한 대화재개에 관해 북한이 아직 공식응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을 겨냥해 공동보조를 취한 것은 미국으로선 껄끄러운 일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5일 러시아 전문가 이고리 부닌의 말을 인용해 북-러 양국이 상호관계강화를 대미대화의 위협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양국은 미국에 대해 전형적 협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언론은 대체로 북-러 공동선언에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평가절하하며 오히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유예조치를 재확인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지는 북한이 2003년까지의 미사일 발사유예 조치를 다시 약속한 것은 부시 행정부에 대해선 처음이라는 데 주목했다. 워싱턴포스트지도 이를 미국의 대화 제의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으로 해석했다.
미국 언론은 북한의 본심은 대미관계 개선에 있으며 이번 공동선언은 미국의 주목을 끌기 위한 상투적인 외교적 제스처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가까워진 北-러/군사-경제협력 전면회복 디딤돌▼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으로 북-러 양국은 오랫동안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전면적으로 회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재임 중 김일성(金日成)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관영 이타르타스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매우 유익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러시아측은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영웅 러-한 의원외교협회 러시아측 사무국장은 5일 “북-러 관계가 정상화되고 러시아의 남북한에 대한 관계가 균형을 찾게 됐다”고 평가했다.
정상회담 후 발표된 모스크바 선언은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언급돼 있어 앞으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개입 의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그리고 주한미군 문제 등이 거론된 점에서 분명해진다.
러시아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평화적인 것이라는 데 동의하면서 북한으로부터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가로막는 ABM 개정에 대한 반대 동의를 얻어냄으로써 입지를 강화했다. 러시아가 주한미군이 철수돼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에 동의한 것도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양국의 실질적 관계진전은 철도연결 등 경제협력과 군사협력에 초점이 모아졌다.
우선 양국 정상이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의 연결 사업에 합의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 사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북한의 대러시아 채무 상환문제와 군사협력에 관해서도 상당한 진전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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