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모스크바 선언’ 내용의 상당부분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쏠린다. 이 선언은 72년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을 지지하며 북한의 미사일이 어느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주한미군철수를 거론하며 통일문제 해결과정에 ‘외부적인 방해’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는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이라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반대하는 러시아의 입장과 미국에 대한 입지강화를 노리는 북한의 의도가 서로 맞물려 나온 결과로 볼 수 있다.
미국을 겨냥한 북-러간의 이 같은 합의가 한반도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러시아나 중국을 배후지원세력으로 적극 끌어들이려 하며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도 그 같은 외교적 노력의 하나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노골적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삼각 연대관계를 강화하고 주한미군 철수문제까지 들고 나온다면 북-미관계는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북-러간에는 첨단무기 구매문제에 대한 의견절충도 있었던 것 같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간다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는 지연될 수밖에 없고 한반도에는 새로운 대결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모스크바 선언’에서 밝힌 6·15남북공동선언에 대한 평가 그리고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사업 등에 대한 합의는 남북한 관계 진전에 기대를 갖게 한다. 일부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서울 답방을 권유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 TSR와 TKR 연결사업은 그 최종 수요자가 우리와 일본이기 때문에 또 다른 남북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부 당국자들도 ‘모스크바 선언’이 남북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이번 모스크바 방문 결과는 한반도 주변 분위기가 점차 대립관계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낳게 하는 게 사실이다. 정부는 남북대화에 대한 조급한 기대보다 ‘대국’을 보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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