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허수주문 주역은 단타매매자"

  • 입력 2001년 8월 6일 18시 24분


한화증권 영업부 김과장은 지난달 말 단말기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했다. 코스닥 등록 A기업 주문내용을 살펴 보던 중 오후 1시반 경 갑자기 매수주문이 60만주가 늘어났다. A주식은 이날 1시까지만해도 여느때처럼 3300∼3500원을 오르내렸고, 주문량은 5만∼7만주에 머물렀었다.

김과장은 갖고 있던 주식 2만주 가운데 1만주를 3400원에 팔아버렸다. 누군가 ‘허수주문’을 낸 뒤 주가가 조금 오를 기미가 보이면 사들였던 주식을 털고 나올 것이므로 주가하락을 예상해 한발 먼저 팔았던 것이다. A주식은 조금씩 가격이 오르다가 2시가 못돼 거래주문 규모가 수십만주가 빠지면서 주가가 결국 3200원까지 떨어졌다.

▽금융감독원 허수주문 조사〓금감원은 올 6월부터 허수주문 집중조사를 벌여 거래소 상장 및 코스닥 등록종목의 절반 가량인 600개 종목에서 허수주문 흔적을 찾아냈다. 금감원은 “현재 20개 계좌가 악의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주문을 내 시장참여자를 현혹시킨 사실을 적발했다”며 “이달 말까지 검찰에 통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적발된 허수주문 혐의자는 대부분 데이트레이더(단타 매매자)였다.

김영록(金永錄) 조사1국장은 “일부 투자자는 이처럼 ‘주식을 살 의사도 없이 하한가로 대량주문을 내는’ 허수주문을 보고 ‘주식 매수자가 늘었다’며 주식을 샀다가 손해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신중한 투자를 당부했다.

증권업계는 그러나 금감원 조사가 대표적인 ‘뒷북행정’ 사례로 꼬집었다. 금감원 발표처럼 허수주문은 데이트레이더의 대거 시장에 참여한 99년 이후 극에 달해 민원이 폭주했던 사례. S증권 B과장은 “그동안 당할 사람은 다 당한 만큼 이젠 왠만해선 허수주문에 속지도 않는다”며 “2년전에 단속됐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허수주문 수법〓한화증권 김과장의 경험한 사례는 고전적인 수법에 속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밖에도 주식시장이 열리기 직전인 아침 8∼9시 ‘동시호가’때가 허수주문의 활동무대가 됐다.

허수 주문자들은 전날 특정 주식을 시장에서 사들였다가 다음날 오전 8시10분 경 하한가로 ‘대량 사자주문’을 낸다. 이들은 동시호가가 끝나기 직전인 8시 57분경 전날 산 주식을 조금 높은 가격으로 팔자주문을 낸다. 결국 9시 장이 열린 뒤 가짜로 낸 대량 사자주문에 영향을 받아 주가가 조금 오르면서 9시5∼10분경 주식이 팔리면 즉각 사자주문이 취소된다. 당연히 주가는 떨어지고 허수주문자는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