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ML통신]찬호가 입다문 이유

  • 입력 2001년 8월 6일 18시 42분


며칠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박찬호의 표정은 밝았지만 스포츠 전문지의 현지 특파원들은 한결같이 취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들은 “박찬호가 경기집중을 위해 야구장 안팎에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며 심리학자의 조언이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47개의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리 본즈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 에이전트가 재산관리, 투자에 실패하면서 거금을 날려버린 후 스콧 보라스 사단으로 들어온 그 역시 경기 30분 전쯤부터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실제 필자가 라커룸에서 본 그는 혼자 앉아있거나 실내를 돌면서 가끔 타구장 TV중계를 보는 것 외엔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국내구단인 LG 트윈스에 합류한 외국인 투수 덕 린턴 역시 지난 토요일 등판 전 동료들에게 충격적인 주문을 했다. “경기 전에 나에게 말을 시키지 말아달라. 이닝중 쉬는 시간에도…”라며.

그런 후 그는 국내 첫 등판에서 9회까지 호투를 했었다. 그가 경기를 끝낸 후엔 동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음은 물론이다.

박찬호가 최근 유독 집중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야구가 다른 어느 구기종목보다도 순간의 영감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연승이 좌절된 4일 경기 후 “속구냐 변화구냐를 망설이다 결국 속구를 던진 것이 결승타를 내주고 말았다”는 그의 말처럼 공 1개에 걸린 상대와의 심리전에서 이기지 않고선 최고의 무대에서 승리를 낚을 수 없음을 터득한 결과가 아닐까.

바야흐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집중력이 그 어느 기술 못지않게 강조되고 있다.

허구연/야구해설가 koufax@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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