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8일 개봉되는 한국 영화 ‘무사(武士)’에서 여솔 역을 맡은 영화배우 정우성(28). 그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용의 눈’을 그리는 것은 관객이다.
그런 부담감 때문일까. 그는 인터뷰 내내 ‘무사’의 짐을 내려놓지 않았다. 촬영은 지난해 12월 끝났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영화 속 분신인 여솔의 잔영이 남아 있었다.
“후반 작업이 길어져 개봉이 늦어졌어요. 97년 영화 ‘비트’가 마무리될 때부터 ‘무사’ 제작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으니까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죠. 관객이 평가를 내려야 비로소 여솔과 후련하게 작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고려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간첩’ 혐의를 받고 사막에 고립됐던 고려 무사 9인의 귀환을 그린 무협 액션.
제작비 70억원과 약 1만㎞에 이르는 중국 올 로케이션. 안성기 정우성 주진모, ‘와호장룡’으로 국제적 스타로 발돋움한 중국 배우 장쯔이(章子怡)로 이어지는 ‘별들의 행진’. 필름 사용량만 9만m가 넘는다. 보통 완성된 장편 영화의 분량이 3000m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만저만 공이 들어간 게 아니다.
극중 여솔은 노비 출신으로 창의 달인이다. 그에게는 고려가 반드시 돌아가고 싶은 땅은 아니다. 돌아간다 해도 천민(賤民)의 굴레가 기다리기 때문.
하지만 여솔은 명나라 공주 부용(장쯔이)에 대한 사랑과 동료들에 대한 우정으로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한다.
영화속 여솔과 현실의 정우성은 꽤 닮았다. 생각은 많지만 말은 적고, 꺼낸 말은 솔직하고 단호하다.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김성수 감독이 캐스팅 시점에 “하고 싶은 배역을 고르라”고 했다. 여솔과 비교하면 캐릭터가 더 복합적인 최정(왕실경호대 장군으로 영화배우 주진모가 캐스팅됨)에 마음이 쏠렸지만 그냥 여솔을 선택했다.
“왜 ‘정우성’ 하면 떠오르는 아웃사이더의 고정된 이미지가 있지 않아요.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최정 역에 마음이 끌렸어요. 그러나 캐릭터 변화에 따른 부담감이 있었지요. 욕심은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여솔이 녹록한 상대는 아니었다.
“저는 주인님이 묻힌 곳을 보러 갈 겁니다.”
여솔의 신분과 성격 등 캐릭터를 상징하는 이 첫 대사는 영화가 시작된 지 30여분만에 나온다. 시나리오에는 ‘여솔, 이래서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식으로 대사 없이 지문으로만 서 너 장씩 넘어가는 대목도 많다.
“첫 대사가 첫 출산만큼 힘들었죠(웃음). 말이 쉽지 눈빛 연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극중에 아예 ‘너 말도 하는구나’라는 대사가 있을 정도니 오죽 답답했겠습니까.”
육체적 고통도 뒤따랐다. 액션 연기 중 왼쪽 무릎의 연골이 파열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무사’의 제작 과정은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겪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93년 데뷔작 ‘구미호’ 이후 여덟 번째 작품인 ‘무사’에서 그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는 “흥행 ‘대박’은 배우의 당연한 바람”이라며 “개인적으로는 방황하는 청춘의 이미지가 아니라 성숙해 가는 남자의 모습과 냄새를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god’의 뮤직 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한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은 소문나 있다. ‘청춘’ ‘광복군’ 등 세 편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감독 데뷔는 자신을 채찍질해온 약속이기도 하다.
“뮤직 비디오를 찍으면서 예산 문제로 컴퓨터그래픽이 줄고 구성이 계속 바뀌었죠. 짧은 경험이지만 배우가 아닌 제작자와 감독의 입장을 느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말해 쑥스럽지만 서른이 지나기 전에 영화를 찍을 겁니다.”
◈정우성의 말말말
▽“해가 질 무렵 전쟁이 시작됩니다. (김)성수 형과 스태프는 거의 미쳐가고.”〓중국 촬영중 해질 무렵 광선이 좋아 짧은 시간 촬영을 서둘렀다며.
▽“장쯔이는 카메라 앞에 서면 더 예뻐지고 매력적으로 변하는 배우죠.”〓상대 여배우에 대한 소감을 묻자. 내친 김에 기자가 장쯔이와 ‘사귄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확인을 요청하자 정우성은 10년 가깝게 자신이 일편단심을 바쳐온 여자 친구가 있다며 부인.
▽“동네 축구팀 스트라이커예요.”〓무릎 부상으로 의사로부터 무리한 운동을 피하라고 ‘경고’를 받았지만 웃통 벗고 축구하는 걸 좋아한다며.
▽“이젠 사이코나 악인이 되고 싶어요.”〓지금까지 사건을 수습하는 인물로 주로 출연했다며.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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