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디지털 경제 시대에 진입한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정부는 꾸준히 추진해오던 주택시장 자율화 정책에서 후퇴해 소형평형 의무비율 제도를 부활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세금 상승이 소형주택 공급 부족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공급을 늘리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소형주택 공급이 최근에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세금 상승은 일정 평형의 공급 부족보다는 전체적인 주택 수급의 불균형에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주택보급률이 94% 정도라지만, 독신 가구를 포함할 경우 86.8%에 불과하다. 아직 주택 재고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주택 보급률이 낮은 상태에서 외환위기 이후 신규 주택 공급도 크게 위축돼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3년 동안 허가받은 물량 중에서 실제로 공사가 시작된 주택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공사 착수 물량이 줄어든 것은 주택 수요 위축과 주택건설 산업의 붕괴가 원인이다.
주택수급불균형이심화하면임대주택시장은공급자위주시장(Seller’s Market)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집주인들은 은행 이자보다 2배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월세를 원하고 있다. 봄, 가을 이사철에는 월세 전환이 늘고, 비수기에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전세와 월세 사이에 힘 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주택 공급 부족상황이 지속되면 월세 전환이 확대될 수밖에 없으며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 늘어난다.
월세 제도가 선진국 주택 시장에서는 보편적으로 정착된 제도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월세가 소득에 비해서 너무 높다. 공공 임대주택 보급이 극히 부족한 상태에서 임대료가 오른다고 해서 임대주택 시장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도 거의 없다. 봄, 가을 전세금이 오르는 시기마다 비슷비슷한 임대료 안정대책만 양산하거나, 주택시장을 또 다시 규제하는 것보다는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아파트가 보편적 주거 문화로 정착한 우리나라의 경우 주택 정책은 건설 기간을 감안해 최소한 3∼4년 후를 내다보는 대책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대책은 효과도 적다. 전세 월세 등의 임대료나 주택 가격은 주택 수급이나 국내 경기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현재 가격 상승 상태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지만 공급 상황에 따라 가격은 다시 하락할 수 있다. 이는 90년대 이후 경험한 일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진출로 가구수가 급격히 증가해 주택 초과 수요 현상이 지속되면서 가격 폭등의 시기를 맞았지만, 200만호 주택 공급 확대 정책으로 10년 동안 가격 안정기를 맞았다. 당장의 전세 안정 대책에 집착하기보다는 3∼4년 후를 감안한 주택 공급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실질적인 주택 보급률이 100%가 되려면 현 상태에서도 주택 재고가 대략 200만호 정도 부족하고, 매년 30만가구 정도가 새로 주택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주택 보급률이 높아서 주택 가격은 안정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기보다는 연간 필요한 신규 주택의 공급량을 추정하고 이에 맞는 공급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주택 건설업체들은 이제 시장 자율 환경에 겨우 적응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또다시 주택시장 규제 정책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주택시장이 자율화된 환경에서 맞는 주택 공급 확대 정책에 대해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주택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세제 감면과 함께 신도시를 포함한 대규모 택지 공급이나 광역 교통 시설 투자 계획도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무 부서인 건설교통부가 주축이 되고, 다른 유관 부서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 주택난은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서민 주거난 악화는 물론 물가 상승, 비용 상승을 유발해 산업 경쟁력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선 덕(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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