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의 0-8 패배를 시작으로 무려 연속 9패의 수모를 당한 끝에 세계 최강 중국을 물리치고 최초로 국제대회 우승을 거머쥔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그녀들은 그 순간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최후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물론 몇몇 나라에 제한된 여자축구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각 부분 축구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거둔 최고의 성적을 그녀들이 일궈낸 것이다.
‘멕시코 4강 신화’의 주인공인 박종환 숭민원더스 단장은 ’여자축구가 세계 최강이 되는 길이 남자 축구의 월드컵 16강 보다 빠르다’고 장담한 바 있지만, 아뿔싸, 그의 호언은 너무도 일찍 현실로 나타났다. 물론 이번 대회에 출전한 브라질과 일본 팀이 원래의 실력이 아니므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것은 불모의 땅에 뿌려진 작은 밀알을 향한 격려의 말로 바뀌어져야 옳다. 지원도 약했고 선수층도 얇고 무엇보다 관중이 거의 없었다. 이 황무지에 드디어 겨자씨보다 작은 희망 하나가 싹튼 것이다.
소박한 일상의 이야기에 휴머니티라는 맛깔스런 조미료를 섬세하게 칠 줄 아는 여성 감독 페니 마셜 감독의 ‘그들만의 리그’ 또한 그렇다. 이 영화에서 야구 감독 듀간 역을 위해 일부러 체중을 불리고 고단한 삶의 피로가 묻어나도록 잔뜩 찌푸린 채 화면을 채웠던 톰 행크스가 우선 기억나지만 역시 지나 데이비스와 마돈나의 핑퐁 연기가 살갑다. 이 영화는 2차 대전이 발발한 후 프로 야구선수들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자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이 6개 팀의 여자 야구단을 출범하여 리그전을 치른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토리라인이다. 알콜에 찌들어 사는 감독을 포함하여 저마다 사연많은 인생들이 야구장을 무대로 속시원이 한풀이를 하는 영화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야 어찌되었건 이제 막 도움닫기를 시작한 우리 여자축구 팀의 승승장구를 기대하며 늦여름, 한순간의 여유로 볼 만한 영화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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