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요방송 일제히 고이즈미 신사참배 생중계

  • 입력 2001년 8월 13일 23시 37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자 일본은 물론 세계의 관심이 야스쿠니신사에 쏠렸다.


○…고이즈미 총리는 13일 오후 4시30분경 신사에 도착해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썼다. 안내인의 인도로 경호원 두 명과 함께 본전(本殿)에 올라선 고이즈미 총리는 한 차례 깊이 고개 숙여 참배했다. 이는 일본 종교인 신도(神道)의 참배 형식과 다른 것으로 이번 참배에 종교적 의미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신사 본전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이날 오전에 보낸 꽃이 놓여 있었다. 약 30초간의 참배를 마치고 나온 그는 신사 내 대기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참배를 전후해 그는 줄곧 굳은 표정이었다.

○…이날 야스쿠니신사에는 1만여명이 몰려 신사측이 나눠준 일장기를 흔들며 “고이즈미 총리 야스쿠니 참배 만세”를 외쳤다. 고이즈미 총리의 개인적 인기까지 겹쳐 참배소 입구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후 3시경 총리가 참배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무라 야스히코(木村康彦·41·자영업)는 “참배일을 바꿔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 한 것은 다행”이라며 “총리의 판단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한편 야스쿠니신사측은 “총리로서는 16년 만의 참배였기 때문에 일장기 5000개를 배포했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전후해 야스쿠니신사 경내에서는 참배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 등의 집회도 열렸다. 한국의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는 총리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오후에 총리의 신사 참배 소식이 전해지자 급히 신사로 시위 장소를 옮겼다. 한편 확성기를 이용해 “총리는 한국과 중국의 말을 듣지 말고 8월 15일에 참배해야 했다”고 외치는 우익 성향의 사람도 보였다. 우익단체의 조직적 시위는 경찰이 사전에 단속한 탓인지 보이지 않았다.

○…총리의 참배 현장에는 내외신 기자 300여명이 몰렸다. NHK 니혼TV 등 일본의 주요방송사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모습을 현장 중계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2시반경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 계획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방송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긴급뉴스로 이를 보도했다. 특히 NHK방송은 총리 참배에 앞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이 대독한 담화 발표 장면과 일문일답도 생방송으로 전했다. 또 고이즈미 총리를 태운 차량이 총리 관저를 떠나 신사로 향하는 모습을 헬기를 동원해 방송했다.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은 총리의 13일 참배에 대해 “이웃국가와의 우호관계를 고려한 결단이며 결코 외압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본유족회 부회장인 모리타 쓰구오(森田次夫) 참의원은 “8월 15일 참배를 기대했으나 국제정세를 고려해 오늘 참배한 것 같다”며 “총리가 국가를 위해 숨진 사람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일본은 지금까지 과거 역사를 애매하게 처리해 아시아의 신뢰를 잃어왔다”며 “이번에 똑같은 일이 벌어진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 평화유족회 전국연락회 오가와 다케미쓰(小川武滿) 회장은 “날짜를 바꾸었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야스쿠니의 존재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재일 한국민단은 “식민지시대 민족 말살의 위기를 맞은 재일한국인을 격분케 했다”며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필리핀의 군위안부 지원단체인 ‘릴라 필리피나’는 “이는 필리핀에서 강간을 자행한 일본 군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또 말레이시아의 반일단체 소속 회원인 로케 투 상은 “한 손으로는 천사와 악수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악마의 손을 잡는 행위”라며 “말로는 평화를 얘기하면서 살인자들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호주 최대의 재향군인단체인 귀환병모임(RSL) 회장인 피터 필립스 예비역 소장은 “총리가 8월 15일을 피했다 하더라도 전범 위패가 있는 신사를 참배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참전자들은 그의 신사 참배를 국수주의적 행동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14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 강행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으며 ‘혼령들을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일본의 외교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으며 10월로 예정된 고이즈미 총리의 중국 방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분석. AP는 또 일본의 한 TV방송사 여론조사를 인용해 “50% 이상이 총리의 신사 참배를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자는 40% 미만”이라고 소개.

▼고이즈미 담화 요지▼

우리나라는 8월15일에 56회 종전기념일을 맞이한다. 21세기의 초입에서 대전(大戰·태평양전쟁)을 회고할 때 숙연한 마음가짐이 우러나오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

대전에서 일본은, 우리 국민을 포함해서 세계의 많은 사람에 대해 많은 참화를 안겨주었다. 결국 아시아 근린제국에 대해 과거의 한순간에 잘못된 국책(國策)에 바탕을 두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일으켜 계량할 수 없는 참해(慘害)와 고통을 주었다. 그것은 지금도 타국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흔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런 상흔의 역사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 전쟁희생자 여러분 모두에 대해 깊은 반성과 함께 애도의 뜻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 같은 나의 신념을 설명하면 우리 국민과 근린제국의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총리 취임 후에도 8월15일 야스쿠니 참배를 하겠다는 취지를 표명해 왔다.

내외에서 나의 신사참배에 대한 찬반론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참배 자체의 중지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 국내외 상황을 진지하게 수용해 나 자신의 결단으로 참배를 행하기로 한 것이다.

총리로서 일단 행한 발언을 철회하는 것은 참괴(慘愧)한 일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나의 지론은 지론으로 하고, 광범위한 국익을 포함해 일신을 던지는 내각총리대신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해 모든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있다.

상황이 허락하면 가능한 한 빠른 기회에 중국과 한국 요로의 인물들과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와 평화, 발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동시에 나의 신념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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