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일본교과서 왜곡문제와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문제로 대일감정이 악화돼 있는 상태.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정상급 투수들이 잇따라 일본에서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는 팬들은 속이 상할 만도 하다. 왜 이들이 일본에선 안 통할까.
▽일본의 1.5군?〓현재 일본에서 뛰고 있는 한국선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트리오’ 정민태 정민철 조성민과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구대성 등 4명. 이 가운데 1군전력은 구대성뿐이다. 시즌초 시범경기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암울하게 시즌을 맞았던 정민태는 2군에서 3연승을 거두며 호기 있게 1군에 진입했지만 12일 1군 데뷔전에서 3이닝 3실점한 뒤 2군행 통보를 받았다. 정민철은 전반기에 잠깐 기용됐지만 1승2패의 성적을 남긴 뒤 2군으로 내려갔고 팔꿈치 부상이 도진 조성민은 1군에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채 ‘올 시즌 출전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그나마 시즌초 반짝하던 구대성도 코칭스태프의 믿음을 사지 못하고 마무리에서 선발로 보직이 바뀌었고 최근 5연패의 부진에 빠져 있다.
▽너무 우습게 봤다〓이들의 실패는 한마디로 준비 소홀. 냉정하게 얘기한다면 구질, 제구력 등 여러가지 면에서 일본투수들보다 한수 떨어진다. 구대성은 최고 스피드가 143㎞ 정도고 평균 스피드는 130㎞대 후반. 정민태는 12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최고 146㎞가 나왔지만 제구력과 변화구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민철 역시 지난해와 올해 140㎞가 넘는 공이 별로 없었다. 물론 이들은 전성기를 넘어서 일본에 건너갔다. 하지만 선동렬도 30대 중반에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의 수호신’으로 군림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뛸 때보다 형편없는 공을 뿌린다는 건 프로의 생명인 몸관리에 소홀했다는 얘기다.
▽용병인가 아닌가〓감독과의 갈등은 한국선수들을 괴롭히는 또 한가지의 요소다. 이종범은 외국인이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가을 마무리 훈련캠프에 빠졌다가 주니치 드래건스 호시노 감독에게 ‘찍혔다’. 이종범은 “한국선수들은 용병이어도 다른 외국 용병들과 보는 시각이 또 달랐다”고 한다. 정민철은 “똑같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요미우리 나가시마 감독을 비난했다. 정민태의 경우엔 구단에서 마치 못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1군 데뷔 하루 만에 2군행 통보를 했다. 그는 “컨디션도 좋았고 공 자체도 좋았다”며 황당하다는 눈치.
▽내년엔 잘할까〓일본에 진출한 역대 한국선수들은 모두 첫 해에 고생했다. 그런 면에서 올해 일본타자들을 상대해본 구대성과 정민태의 향후 시즌은 올해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크다. 요미우리와 3년계약한 정민태는 “조기귀국의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 뒤 “일본에서 야구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내고 싶다”고 밝혔다. 아내 출산 때문에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성민은 2군에서 내년을 기약하며 맹훈련 중. 의욕이 크게 떨어져 2군훈련마저 등한시하고 있는 정민철은 2년 임대기간이 끝나는 올 시즌 뒤 한국 복귀가 유력하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