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금융감독원은 올 들어 두 번째로 채권은행의 ‘기업 신용위험평가’에 따라 49개사를 정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달 발표와 마찬가지로 기업이름은 빠진 채 ‘49’라는 숫자만 공개됐다.
금감원은 “이름을 공개할 경우 시장에 불안을 조성하고 정리대상기업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원래 발표하지 않으려 했으나 ‘언론 서비스’차원에서 숫자라도 알려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금감원이 내건 ‘시장 불안’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퇴출될 기업을 가려주지 않는 바람에 멀쩡한 기업이 악성 루머의 피해를 보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해 11월3일 금감원과 채권은행단이 52개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하면서 내걸었던 이유 역시 ‘시장불안감 해소’였다. 살 기업과 죽을 기업을 명확하게 분간해줌으로써 시장에 안정을 주겠다는 취지로 52개 기업의 이름을 공개했던 것이다. 명단공개는 구조조정의 본뜻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금감원이 정리대상기업의 명단을 밝히지 않더라도 채권은행이 손을 뗄 때쯤이면 어떤 기업이 여기에 포함됐는지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된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들은 이런 정보를 얻기 어렵다. 이같은 ‘정보 불균등’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 유통될 수 있는 정보가 시장에 공평하게 공개돼야 마땅하다.
금감원에서는 9월까지 두차례 더 ‘숫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업 이름을 감추는 것이 과연 시장의 불안감을 줄이는 일인지, 관계당국이 강조하는 정책운용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훈<금융부>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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