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이즈미의 참배 이후

  • 입력 2001년 8월 14일 18시 31분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마침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패전일인 8·15를 피해서 참배, 한국과 중국 같은 아시아 나라의 날카로운 감정을 다소 비켜서려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이즈미 총리가 ‘밖’(외교)에서 마찰을 빚고 손해 보더라도 ‘안’(내정)에서 남기자는, 이웃나라와의 관계보다는 일본 국민의 인기를 확보하자는 의도임이 확인된 셈이다.

일본은 당장 가을에 인접국과 여러 갈래의 외교적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연례적인 한일 정상회담이 있고, 유엔총회에서의 한일 협력 문제도 있다. 중국과도 10월에 상하이(上海)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문제 등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총리가 굳이 한중의 강력한 비판과 경고를 무릅쓰고 전범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를 찾아가 ‘총리로서 마음을 담아’ 참배한 것은 주목거리다.

일본의 45년 패전 후 처리는 독일 등과는 전혀 달라 손가락질을 받아왔다. 독일의 경우 스스로 10만건 이상의 나치 전범 용의 사안을 조사하고 6000건 이상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전승국 프랑스조차도 비시정권기의 자국 관료와 민병을 ‘인도(人道)에 어긋나는 죄’로 심판했다. 그러나 일본은 일제군국 전범에 대해 단 한건도 제 손으로 처단 심판한 적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 일본 내 양심세력조차 그런 ‘애매한 일본’을 비판해 왔다.

이제 그 무책임하고 ‘애매한 일본’이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단호한 일본’이 되어 일본도(刀)를 빼드는 형국이다. 교과서를 왜곡하고 총리가 앞장서서 전범을 추모하는 것이 그 증빙이다. 이번에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 담화에서 “오늘 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그 같은 (야스쿠니 영령들의) 존귀한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생각한다”고 한 그것은 바로 우익들이 부르짖던 소리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대중과 정치 리더의 우경화는 분명 위태로운 지경으로 접어들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98년 10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가 밝힌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도 그 참된 의미가 구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일본의 ‘역사 역행(逆行)’을 제어하는 국제적인 공동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안인 역사교과서왜곡, 남쿠릴열도 꽁치조업 문제 등에도 빈틈없이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일외교가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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