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완범 교수(정치학)는 최근 펴낸 저서 ‘삼팔선 획정의 진실’(지식산업사)에서 38선의 획정이 군사적 편의에 따라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기존 학설과 달리,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따라 의도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소련이 함경도에 들어온 직후인 1945년 8월11일 새벽 2∼3시 사이 딘 러스크라는 미군 대령이 거의 단독으로 군사적 편의에 따라 38선을 획정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같은 결정에는 미국 국방성의 의사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이 교수는 “38선은 적어도 포츠담회담이 진행되던 1945년 7월25일 경 포츠담 회담에서 결정됐으며, 8월11일 새벽은 이미 논의된 38선을 실무적으로 확정한 시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그 구체적인 증거로 딘 러스크가 펜타곤에서 벽에 걸려 있던 것을 보고 결정했다는 지도를 제시했다. 이 지도에는 38선이 명확치 않아 그 지도를 보고서는 38선을 결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러스크 대령의 상관이었던 작전국장 존 에드윈 헐 중장이 1949년에 발언한 ‘증언 기록’에서도 “38선은 포츠담회담에서 마련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또한 러스크가 봤다는 지도와 달리 당시 미국 요원들이 참고했던 여러 지도에는 38선의 위치가 분명히 드러나 있음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정황과 증거를 종합해 “미국의 한국 점령은 일본의 패전 조짐이 나타나던 1944년부터 국무부에 의해 준비됐으며, 1945년 2월부터는 미국 군부에 의해서도 준비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저지한다는 정치적 목적 아래 한반도 점령과 군정에 대해 심사숙고하면서 준비했고, 소련의 팽창을 의식했던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직 소련이 참전하지 않았던 1945년 7월25일 한반도 점령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하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 교수는 1988년 발표한 논문 ‘한국 남북분단의 원인과 포츠담 밀약설’에서 “한반도 분단이 포츠담회담에서 밀약됐다”는 설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는 포츠담회담 관련 자료들이 공개되지 않아, 신 교수의 학설을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교수가 미국 정부기록보관소 자료실에서 명백한 증거를 찾아 제시함으로써 신 교수의 주장이 10여 년만에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38선 획정 문제는 한 나라의 분단을 결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 소련 모두 책임을 회피하며 증거의 공개를 꺼렸다”며 “이제 이 교수의 노력으로 남북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분단됐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