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앞으로 부닥칠 더 큰 위험은 지금 겪고 있는 침체가 아니라 ‘재정 악화’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서강대 김광두(金廣斗) 교수는 최근 진념(陳稔)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재정 위기’의 가능성을 걱정했다. 김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국가채무는 119조원이지만 정부 지불보증채무 등을 감안한 광의의 나라 빚은 600조원 안팎으로까지 볼 수 있다”며 “2003년부터 예산에 큰 부담이 될 공적자금 원리금 상환 문제까지 감안한다면 재정악화의 위험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이만우(李萬雨) 교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5일 국민임대주택 10만가구 추가건설 등 재정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약속’을 한데 대해 “이렇게 되면 2003년 균형재정 달성이라는 현 정부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후 한국의 절박했던 상황을 감안할 때 국가채무 증가나 공적자금 투입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의료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군사작전식으로 밀어붙인 의약분업이 초래한 의보재정 파탄, 과연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지 논란을 빚는 과도한 복지정책 등 현 정부 출범 후 재정에 짐이 된 정책이 잇따랐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각각 98년 11월과 올 2월 일본의 국채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무디스 등은 신용도 격하의 결정적 이유로 일본의 장기불황이 아니라 정부채무 급증 등 재정악화를 꼽았다.
아무리 경기회복이 급하다고 해서 재정불안을 부채질하는 정치논리가 판치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 경제가 잡을 수 있는 ‘토끼’는 없을 것이다.
권순활<경제부>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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