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우리 둘만의 커플팬티 부럽지'

  • 입력 2001년 8월 17일 13시 40분


◇ 마케팅 바람타고 신세대 커플문화 확산… 반지·티셔츠는 구식, 다이어트·헬스도 둘이서

"자기야, 나 너무 힘들어. 좀 쉬었다 하면 안 될까?” “아직 2km 밖에 안 뛰었잖아. 조금만 더 뛰자. 자기 힘 내!”

퇴근시간이 조금 지난 광화문의 한 헬스클럽. 20대로 보이는 남녀 직장인 한 쌍이 러닝머신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두 사람은 근처 회사에 다니는 사내 커플. 한 달 전 이 헬스클럽에 함께 등록해 퇴근 후면 곧장 이곳으로 직행한다. “연애하면서 퇴근 후에 맛있는 집들을 찾아 다니다 보니 둘 다 몸무게가 많이 불었어요. 요즘은 먹고 마시는 대신 함께 운동하는 걸로 데이트를 대신하고 있어요.”

예전에 혼자 헬스클럽에 다닐 때는 걸핏하면 빠지기 일쑤였고 운동 자체가 큰 고역이었는데, 남자친구와 함께하다 보니 거의 빠지는 일 없이 즐겁게 운동을 한다는 이민경씨(23). 운동이 끝나면 서로 바디 스트레칭을 도와주며 ‘진한’ 스킨십도 나눈다.

◇ 팔걸이 없는 극장 연인석 인기

함께 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요즘 커플은 모든 걸 함께하고 싶어한다. 운동도 함께하고 심지어 다이어트도 같이한다. 커플 단위 손님이 늘어나면서 `커플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서울 강남의 ‘몸앤맘’ 비만센터.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두 사람이 함께 식이요법에서부터 운동까지 총체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연인·부부 고객이 많고 자매·형제가 함께 등록하기도 한다. 이 비만센터의 안동삼 실장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은근히 경쟁심리도 발동하기 때문에 혼자 하는 사람보다 기간 대비 효과가 큰 편이다”고 한다.

얼마 전 건강사이트 `‘e호스피탈’(clinic.co.kr)에서 실시한 ‘커플 다이어트 서바이벌’대회에도 다수의 연인·부부·친구·형제 커플이 참가해 감량 경쟁을 벌였다. 8주 동안 진행한 행사에서 1, 2등은 역시 열애중인 연인 커플에게 돌아갔다. 사이트 운영자 전은정씨의 말에 따르면 살을 빼고 싶어하는 이유도 대부분 ‘연애’ 때문. 직장 남성의 경우 술자리가 많아 다이어트가 힘든 편인데, 이때 연인 사이인 여성이 함께하자고 하면 남자도 어쩔 수 없이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커플 고객을 겨냥한 마케팅은 이렇듯 커플 중 한 사람이 뭔가를 하자고 하면 자신의 취향과 의도에 상관없이 대부분 따라하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 많다. 요즘 커플들은 뭐든 함께하고 싶은 심리가 강하고, 특히 젊은 연인들일수록 연인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젊은 커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극장과 PC방에서는 의자 사이에 팔걸이가 없는 연인석이 단연 인기. 부분적으로 연인석을 만들어 커플 고객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던 극장은 대부분 관객이 젊은 연인들임을 감안해 아예 전체 객석을 팔걸이를 내렸다 올렸다 할 수 있는 좌석으로 바꾸고 있다. 심야상영일수록 커플고객이 대부분이어서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학교앞 PC방에도 연인·친구 등이 커플석에 나란히 한자리에 앉아 함께 게임이나 인터넷을 즐기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똑같은 디자인의 커플링을 나눠 끼고,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커플은 이제 옛 말. N세대 커플은 커플 팬티를 입고, 커플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랑을 과시하며, e-메일로 일기장을 주고받는다. 인터넷 커플사이트 내 쇼핑몰에는 ‘바람방지용 팬티’ ‘연애스토리 팬티’ ‘첫 키스 기념 선물’ ‘프로포즈용 상품’ 등 기상천외한 커플용품이 가득하다.

◇ 커플사이트 인터넷 새 강자 부상

커플만을 위한 사이트 ‘커플클럽’(www.coupleclub.co.kr)의 쇼핑몰. ‘헤어지지 말자’ ‘바람피지 마’라는 문구가 둘의 사진과 함께 인쇄된 팬티가 있는가 하면, 둘만의 사랑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어 인쇄한 팬티도 있다. ‘오빠… 우리 만난 지 벌써 2년…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함께여서 넘 행복했어. 앞으로도 늘 함께하는 우리가 됐음 좋겠다. 10년 후에도 우리 사랑 변치 말길… 아마 그땐 우리 둘만이 아니겠지 ^_^’ 하는 식으로 장문의 글을 새긴 ‘스토리 팬티’도 있다.

이 쇼핑몰의 상반기(2001년 1∼7월) 매출액은 4억1000만 원으로 1위는 커플링, 2위 꽃배달, 3위 속옷과 티셔츠, 4위 탄생석 보석, 5위 화장품 순으로 나타났다. 사이트 운영자는 “커플들은 각자의 생일 외에도 만난 지 100일, 첫 키스한 날 등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기념일이 많다. 계절마다 달마다 기념일이 있고 이때마다 선물을 주고받으며 추억을 쌓는 것이 N세대의 특징이기 때문에 유행을 타지 않고, 개발할 수 있는 상품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한동안 동창생 사이트가 사이버상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에는 N세대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커플사이트가 인터넷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이들 사이트는 커플에게만 회원 가입자격을 부여한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면 커플카드를 만들어 주고 온라인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애형태가 비슷한 커플끼리 따로 동호회를 결성해 활동하는 커뮤니티도 활발하다. ‘커플클럽’의 경우 ‘80년 동갑커플’ ‘얼마 후 남자를 군대 보내야 하는 커플’ ‘애인과 식성이 다른 커플’ ‘안 해본 거 없는 커플’ ‘사랑하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커플’ 등의 이름으로 동호회가 결성되어 있다.

17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는 ‘커플사랑’(www.iilove.com)의 송원식 마케팅 팀장은 “N세대 커플들은 휴대폰·컴퓨터 등 통신수단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극장·여행·공연 등의 주요 타깃층이며 곧바로 결혼시장과도 연계되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는 비즈니스는 어떤 부문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얼마 전 한 웨딩업체와 합병한 ‘커플사랑’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커플들을 겨냥한 마케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가 용이한 매력적인 시장임이 분명하다.

요즘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커플 만들기’가 유행이다. 박그리나 교사(서울 여의도초등학교)는 “어른들의 시각으로 ‘커플’이라는 말에 긴장할 필요는 없다”면서 “요즘 아이들은 재미나 즐거움을 매개로 한 친한 이성친구를 지칭할 때 흔히 ‘커플’이라고 한다”고 말한다. 나와 잘 놀아주는 친구, 내 편이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란다. 그러나 박교사도 “소비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그치는 커플문화에 아쉬운 면이 있다”면서 “N세대를 위한 좀더 건강한 커플문화가 필요한 때다”고 말한다.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N세대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커플’. 정신과 전문의 표진인 박사는 “지금의 커플문화가 예전과 다른 것은 남녀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준비하고 즐긴다는 점이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 ‘커플클럽’ 김연대 대표

“삼각관계·양다리커플은 사절”

인터넷 커플사이트 ‘커플클럽’을 운영하는 김연대씨(33)는 “쉽게 만났다가 쉽게 헤어지는 것은 못 본다”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상품을 팔면서 두 사람이 사랑의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AS까지 책임진다는 것이 그의 소신.

“연인을 위한 언약식 이벤트를 만들고, 싸운 연인을 화해시키기 위해 매니저가 출동하기도 합니다. 헤어진 커플이 사이트에서 다시 만나 결혼에 이르렀을 땐 보람을 느꼈지요.”

99년 개설한 이 사이트의 회원 수는 50만 명에 이른다.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가입해야 하고 헤어지면 자연 탈퇴된다.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등 연인에게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헤어지는 커플들이 많다고.

“흔히들 요즘 젊은 사람이 인스턴트식 연애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엔 안 그래요. 사랑에 대해 진지하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 더 많아요. 고민이 생기면 회원들이 함께 공유하면서 조언도 아끼지 않죠.”

연애가 그저 둘만의 비밀스런 일이었던 예전과 달리 오픈한 공간에서 사랑을 키우고, 데이트 비용도 반반씩 부담하는 젊은 세대의 사랑법이 보기 좋다는 김씨의 사이트 홍보 한마디. “삼각관계·양다리커플은 사절합니다. 두 사람만의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 가실 분들은 꼭 우리 사이트를 들러주세요.”

<주간동아 298호 200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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