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삶이 힘들때 읽는 '부드러움의 힘'

  • 입력 2001년 8월 17일 18시 30분


▼'부드러움의 힘' 고진하 에세이/228면 7000원/생각의나무▼

시인 고진하는 키에르케고르에 비견될만한 실존적 사유에 천착해온 작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신의 사랑을, 철학이 없는 시대에 변치 않는 생의 진실을 찾아왔다. 그의 실존적 사유는 문학 종교 철학으로 이어지는 이채로운 지적 궤적을 그린다.

종교적 잠언이 가득한 이 에세이에서 그는 속된 욕망이 사리진 자리에 고요히 남겨져도 고독과 대면한다. 그는 “힘겨운 계절, 존재의 가벼움에 이르려면 침묵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책은 ‘부드러움’ ‘침묵’ ‘여백’ 세부분으로 나뉜다. 시인의 깊은 눈은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 나름의 ‘여백의 철학’을 길어올린다. 부드러움은 ‘생명의 모태’이며, 침묵은 ‘무아(無我)의 철학’이며, 여백은 ‘존재의 빈칸’이 된다.

각각의 글은 이야기와 명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화가 먼저 나오면 사색의 잠언이 마주보며 얘기하듯 이어진다. 마지막 울림은잠언시로 마무리한다. 책 곳곳에 부처 노자 예수가 한데 어울리고,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나 에픽테투스의 ‘삶의 기술’ 같은 영적 저작의 잠언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어느 곳에서도 고씨는 목소리 높여 주장하거나 섣부른 가르침을 펼치지 않는다. 대신 독자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이며 맑은 언어로 지친 일상의 상처를 씻긴다.

‘눈의 아름다움은 / 잘 쌓이는 데 있고 / 구름의 아름다움은 / 머물지 않는 데 있으며 / 달의 아름다움은 / 둥글었다 이지러졌다 하는 데 있다고 한다. / 그렇다면 / 인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 소리 없이 쌓이는 / 희디흰 눈의 고요와 침묵을 닮아 / 삶의 애증과 집착을 벗어 존재의 가벼움을 누리며, / 차고 이우는 달을 닮아 / 채움과 비움이 자유자재한 영혼으로 / 사는 데 있지 않으랴.’(‘아름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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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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