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연명/'항공대국'으로 거듭나자

  • 입력 2001년 8월 19일 18시 22분


한국 항공산업의 현주소는 항공 여객교통량 세계 11위, 화물교통량 세계 3위로 요약된다. 또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대한 재정 기여금액도 ICAO 전체 186개 회원국 중 10위에 해당된다. 이 정도면 국제적으로 항공대국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높은 사고율이 2등급 추락 불러▼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한국은 33개 상임이사국에 속하지 못해 국제 항공무대에서 목소리가 약하다. 그 동안 국내 항공업계는 경제 규모에 걸맞게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다가올 ICAO 총회에서는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항공 당국에 대한 안전관리능력평가(IASA) 결과 한국을 ‘항공안전위험국’(2등급)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5월의 2등급 예비판정 이후 정부는 미 FAA가 지적한 미흡한 분야를 개선하기 위해 전담팀까지 구성해 밤을 지새우며 제도 정비, 인원과 조직의 확충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1996년 1등급 판정을 했던 미 FAA가 2등급으로 하향 조정한 표면적인 이유는 항공법 개정의 지연과 항공전문직의 교육 및 훈련 미비에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1997년 8월 대한항공의 괌 추락사고 이후 계속된 국내 항공사의 대형사고에 기인한다. 한국의 항공기 사고율은 세계 평균과 비교해 10만 비행횟수당 약 3배, 10만 비행시간당 약 2배나 높아 항공안전 후진국으로 인식돼 왔다.

어쩌면 이번 결과는 4년이라는 기간 동안 항공안전에 적절한 대응과 충분한 투자를 하지 못했던 정부의 각 부처와 항공사의 개선노력 부족, 사고 발생 당시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권,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 등 총체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공안전 2등급 판정으로 인해 한미노선은 현행 운항 수준으로 동결되고 증편, 신규취항 금지 등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당장은 여행객이나 항공사가 좌석공유 취소에 따른 직접적 손실이 크지 않을 전망이지만, 2등급이 장기화될 경우 노선 확장이 제한되고 유수 항공사와의 제휴가 어려워져 국내 항공사와 국민이 입게 될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쌓아온 위상이 손상을 입을 처지에 놓여 있다.

아직도 사건의 책임공방으로 시끄럽다. 지금은 국내 항공사상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음이 분명하다.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또한 동북아 허브공항을 목표로 건설된 인천국제공항을 거점으로 비상하려는 국내 항공산업이 ‘항공안전 2등급 국가’ 판정으로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 모두 뼈아픈 반성을 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항공안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항공안전 1등급 국가’로 복귀해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를 위해 법과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하며, 항공 인력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강화돼야 한다. 그 동안 정부는 항공안전 투자에 인색하였다. 앞으로는 투자의 잣대를 국내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항공은 국제환경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조직과 기구도 국제기준에 맞춰야 한다. 또한 안전에 대한 규제는 강화해야 하지만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여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항공사에게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성장아닌 안전에 정책 초점을▼

장기적으로는 항공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국제 항공무대에서 항공외교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외적 성장 위주의 항공정책에서 벗어나 안전(Safety)과 효율성(Efficiency)을 정책 목표로 삼고, 항공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또한 미 FAA가 지적한 분야 외에도 비행장, 관제, 위험물 수송에 관한 기준이 국제기준에 부합되는지를 검토해 향후 예상되는 다른 분야의 점검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항공안전도를 하향 조정한 미국의 결정이 항공안전 수준을 높여주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싶다. 이번 ‘항공안전 위험국’ 판정이 한국의 항공외교 능력을 높이고, 항공안전 의식을 향상시켜 선진 항공대국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연명(교통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항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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