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경기에 나오지 못하지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프랭크 토머스는 개인 기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옛 동료 마이크 카메론은 토머스를 가리켜 ‘기록 벌레(stat rat)'라고 불렀던 바 있다. 한국에서라면 양준혁이 그런 선수다. 양준혁이 가장 좋아하는 기록은 타율이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 양준혁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8년 연속 3할 타자이며 9년째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타이틀이나 개인상과 인연이 적은 양준혁이기 때문에 기록에 더 집착하는지 모른다. 어느 정도로?
올시즌 초반 양준혁은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4월 양준혁은 57타수 14안타, 타율 0.246을 기록했다. 0.246에서 현재 타율 0.330으로 뛰어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재미있다. 양준혁은 6월 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4타수 3안타를 때려내며 시즌 타율을 드디어 3할로 끌어올렸다. 이때까지 때려낸 45안타 중 장타는 모두 5개였다. 일단 3할 타자로 복귀한 후부터 양준혁은 다시 장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6월 2일 이후 장타는 59안타 중 18개.
이런 경우 ISO(isolated power average)라는 수치를 적용하는 것이 편하다. ISO는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수치로 타수당 엑스트라베이스(extrabase, 장타로 추가되는 베이스, 2루타는 1, 3루타는 2, 홈런은 3)를 나타낸다. 슬러거들일수록 수치가 높으며 순수하게 배팅 파워를 측정한다는 점에서는 장타율보다 장점이 있다. 6월 2일 이후 양준혁의 ISO는 0.224(타율 0.347, 장타율 0.571)이다. 반면 6월 1일 이전의 기록은 0.083(타율 0.310, 장타율 0.393)에 불과했다. 6월 1일 이전에는 기록 관리를 위해 스스로 배트를 짧게 잡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혹은 비꼬아서 ‘3할 귀신’에 씌였다고도 할 수 있다.
‘3할 귀신에 씌인 양준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루치아노는 ‘예금잔고보다 타율에 더 신경쓰는’ 것을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근성이라고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LG 트윈스의 김성근 감독에게 양준혁은 -8월 16일자 스포츠서울의 기사를 빌자면- ‘생각없는 선수’가 된다. 여기에서 ‘없는 생각’이란 팀에 대한 희생 정신이다. 팀의 승패보다 개인 기록을 더 중시하는 선수는 팀에 해악이 된다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타점이나 득점권 타율 등은 허수라고 일축한다. 두 부문에서 양준혁은 당시 팀 내 수위에 올라 있었다. 승패와 무관한 시점에서 기록되는 안타나 타점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범위를 좁혀보자. ‘7회 이후 2점차 이내 상황’에서 양준혁은 7월까지 타율 0.278을 기록했다. 현재 타율 0.330에 비해 상당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36타수 동안 양준혁은 볼넷 7개를 얻었으며 10안타 중 4개를 장타로 기록했다. 낮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OPS는 0.923으로 시즌 기록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김성근 감독의 생각보다 양준혁은 찬스에 약한 타자가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36타수는 충분한 크기의 샘플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감독들이 느끼는 ‘승부처’는 36타수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기적인 선수는 해악이 될지도 모른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타자로 꼽히는 장훈도 “이기적인 선수가 많으면 우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장훈은 퍼시픽리그 도에이 플라이어스 시절 자신은 이기적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LG 부진의 책임은 팀의 승패보다 개인 기록을 중시하는 스타 플레이어 한 명에게 있지 않다. 팀 기록이란 결국 개인 기록의 합이다. 개인 기록이 좋은 선수가 많을수록 팀의 기록은 좋아진다. 팀의 투타기록이 좋으면 승률도 높아진다. 단 전자(개인 기록-팀 기록)에 비해 후자(팀 기록-팀 승률)는 연관성이 약하다. 외형상 좋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승률이 낮은 팀도 있다. 가령 팀 득점 1위, 팀 방어율 4위를 기록하면서 5위에 머물러 있는 롯데 자이언츠가 그렇다. 20일 현재 LG는 517득점, 582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득실점에서 기대할 수 있는 승수는 41승. LG의 현재 승수는 40승으로 1승의 차이 밖에 없다. 롯데는 기대승수에 비해 8승이 더 적다. 즉 LG의 현재 순위는 기록이 알려주는 만큼이다. 양준혁이 기록에 대한 집착을 벗는다면 더 존경받는 선수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재중과 서용빈, 홍현우가 보다 이기적이 되는 것이 LG의 순위 다툼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팀의 우승 가능성이 멀어지면 선수들은 내년 연봉을 위해 이기적이 된다. 그들은 프로이기 때문이다. 장훈의 도에이도 만년 하위팀이었다. 감독의 임무 중의 하나는 팀과 개인 성적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통제하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의 비난도 이런 의미였다고 호의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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