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짜리와 다섯살짜리 아들들이 늘 말썽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위층 주부의 두 딸은 자신의 아들과 동갑들인데도 귀엽고 어른스럽기까지 한데…. 나들이가 끝날 무렵엔 늘 아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아들도 대들어 기분이 더욱 상하게 되는 것이다.
‘말썽 피우는 아들, 사려 깊은 딸.’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국내의 일만은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이다. 무엇 때문일까?
과학자들은 “아들이 딸에 비해 유전적으로 ‘열성(劣性)’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와 과학적 증거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 최근호는 ‘아들은 열성’이라는 특집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말썽꾸러기 사내 아이〓미국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적 중 D와 F의 70%가, 학습 불능의 3분의 2가 남자 아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알코올 및 약물 중독의 90%, 청소년 범죄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의 80%가 남자 아이라는 것. 2007년경에는 미국내 남자 대학생 수는 6900만명으로 여학생(9200만명)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1학년(우리의 고2) 남자 아이의 평균 작문실력이 8학년(중3) 여자 아이 평균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학교 동아리의 대부분에서 여자 아이들이 ‘리더’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교육계에선 남자 아이들을 여자보다 초등학교에 늦게 입학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남녀 공학학교 내에서 ‘남자 반’만 따로 만들어 사내 아이의 특성에 맞춰 가르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어메리컨대의 데이브드 새드커 교수는 “미국 교육계가 여자 아이에 신경쓴지 20년 만에 이번에는 뒤떨어진 남자 아이들을 걱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전적 우열은 왜?〓현재 과학자들은 남녀 차이를 남자의 유전적 취약성에서 찾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남자 태아가 숨질 가능성이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남자 태아가 뇌손상을 입거나 뇌성마비가 될 위험은 여자 아이보다 훨씬 크다. 뇌 발달을 기준으로 보면 남자 신생아는 여자보다 평균 6주 뒤진 상태에서 태어난다.
올해 초 사람의 유전자 지도가 공개될 당시 남성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여성보다 2배 가량 많다는 점이 발표됐다. 따라서 유전자 고장으로 ‘불량’이 될 가능성도 남자가 훨씬 높은 것이다.
▽행동이 앞서는 아들, 사려깊은 딸〓대체로 남자 아이들은 신체 운동에서, 여자 아이들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뛰어난 편이다. 뇌는 정서적인 토양 위에서 발달하기 때문에 정서적 측면에서 뛰어난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에 비해 지능과 사회성이 향상되기 쉽다.
뇌과학의 발달로 이러한 남녀간 차이가 왜 생기는지 규명되고 있다.
뇌에는 감각신경 또는 운동신경과 정보를 교류하는 ‘백색질’과 정보처리가 이뤄지는 ‘회색질’이 있는데 남자는 백색질이 많은 반면 여자는 회색질이 많다. 게다가 여성의 뇌는 뇌의 좌우 반구를 연결하는 ‘뇌들보’가 잘 발달해 있다. 남성의 뇌들보가 ‘구리 전화선’이라면 여성의 뇌는 ‘광(光)케이블’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이 언어구사 능력이나 판단력 등에서 뛰어날 수 밖에 없다.
또 여성은 감정을 처리하는 곳이 언어처리 영역에 인접해 있지만 남자는 본능과 관련된 뇌 부위에서 감정 처리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뇌 의학자들은 “여성의 뇌는 남성보다 11% 작지만 훨씬 더 정교하게 진화했다”고 말한다.
▽환경이 유전적 차이를 더 벌린다〓뉴욕대 심리학과 니오브 웨이교수는 “사실 남자 아이들도 정서적 교류를 원한다”면서 “그러나 가정 등에서는 그나마 부족한 남자 아이의 정서처리 능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딸이 울면 “왜 울지”라며 원인을 물어 정서적 해결을 시도하는데 반해 아들이 울면 “괜찮아, 사내가…”라는 식으로 덮어버린다. 이런 태도는 남자 아이들의 문제를 키워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존 본능이 여자보다 발달한 남자 아이들은 ‘왕따’될 것을 두려워 해 정서적인 표현을 삼가하고 단순 과격해지곤 한다는 것.
보스턴 어린이병원의 엘리 뉴스버거 박사는 “남자 아이는 유전적으로 정서적 측면이 약한데다 학교 생활이나 친구 관계 등에서 필요한 정서적 훈련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다”며 “그런데도 엄청난 기대감 속에서 크므로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좌절하기 쉽다”고 말한다. 아들에게도 지나친 기대 대신 이해와 사랑이 필요하는 것이다.
(도움말〓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소아정신과 노경선 교수, 삼성서울병원 소아정신과 정유숙 교수)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남자아이 잘 키우려면▼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조세프의 토마스 에디슨학교에서는 남자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 때 되도록 많은 시간을 줬다. 남자 아이들은 뇌의 정보처리 속도가 여자 아이보다 늦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수업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는 남자 아이들에게 남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교실 뒤로 나가 움직이도록 했다. 화가 날 때에는 먼저 쏘아붙이지 않도록 가르쳤다. 이후 그저 그런 학교 중의 하나였던 이 학교가 3년 만에 성적이 미주리주의 ‘톱 10’에 들게 됐다. 정학조치를 당한 학생 수도 연간 300여명에서 22명으로 줄었다.
미국 메릴랜드주 풀스빌의 의사인 레너드 색스 박사는 한 아이에게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라는 진단을 내렸는데 그 아이는 약을 먹지 않았는데 괜찮아졌다. 이유는 부모가 아이를 남녀 공학이 아닌 ‘소년 학교’로 전학시킨 때문으로 풀이됐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정신과 정유숙 박사는 “두 사례는 남자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교육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남자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면서도 과보호하는 양면성을 지니는데 우선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또 과보호도 아이의 정서 발달을 저해하므로 피해야 한다. 아이에게 “남자는 이래야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남자 아이가 다른 집 여자 아이나 누나 여동생 등보다 못하면 참지 못하는 부모가 많은데 사춘기 이전의 남자 아이는 정서나 지능 발달, 사회성 등에서 여자 아이보다 늦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교사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남자 아이에게 무조건 엄격한 규율을 따르도록 강요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풀어주고 꼭 지켜야 할 것만 지키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의력 결핍장애 체크리스트▼
남자 아이들이 부산하고 주의가 산만한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도를 넘을 경우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를 의심해야 한다.
ADHD 증세인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공부도 제대로 못하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에게 제대로 치료받으면 증세를 개선시킬 수 있지만 방치할 경우 나중에 범법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병원에서는 약물 치료나 집단 놀이 프로그램 참여 등의 방법으로 고친다. 다음은 ADHD의 대표적 증세.
■3∼5세
△밥먹을 때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장난감을 갖고 오래 있지 못하고 곧 다른 장난감으로
넘어간다.
△간단한 지시도 따르지 못한다.
△보통 아이보다 시끄럽게 논다.
△끊임없이 말하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자주 끼어든다.
△무례한 행동을 자주 한다.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제멋대로 물건을 치워버린다.
△어린이집 등에서 “다루기 힘들다” “행동에 문제가 있
다”고 말한다.
■6∼12세
△위험한 행동을 자주 해 사고를 낼까 늘 염려된다.
△앉은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계속 꼼지락거리며 더
러 수업시간에 교실을 돌아다닌다.
△주의가 산만해 숙제나 심부름 등을 제대로 못한다.
△엄마나 교사가 보는 앞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매우 거칠게 논다.
△질문에 대해 부적절한 시점에 답하고 불쑥불쑥 말한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는 등 규칙을 준수하
지 못한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실수가 잦다.
△학교 성적의 기복이 심하다.
△친구가 별로 없고 또래 아이들로부터 평판이 나쁘다.
△교사가 “학습에 의욕이 없다” “게으르다” “행동에 문
제가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