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인/‘서울시 화장장’ 주민동의 받아야

  • 입력 2001년 8월 26일 18시 21분


최근 지방자치 10주년을 평가하는 학술행사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7일에는 한국지방자치학회가 하계학술대회를 마치면서 ‘지방분권을 위한 부산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학회는 이 선언을 통해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중앙의 집권적 인선, 대도시의 과밀화와 농촌의 과소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획일적 지배 등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는 문제들을 제기했다.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지배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광역자치단체의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획일적 지배이다. 이런 문제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화장장이나 쓰레기 매립지 등 비선호시설의 입지 선정이다.

최근 언론은 서울시의 화장장 및 추모공원 건립과 관련한 기사를 연일 크게 보도했다. 추모공원 후보지 선정일지와 더불어 선정배경 및 향후 일정 등이 보도되기도 했고, 서초구 주민과 구청의 강력한 반발도 보도되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이와 같은 선호시설이나 비선호시설의 입지를 둘러싸고 야기되는 갈등은 더욱 첨예화하고 있다. 갈등이 첨예화하는 이유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상급기관의 하급기관에 대한 행정이나 주민에 대한 행정이 아직도 권위주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서초구의 화장장 및 추모공원 건립 문제는 바로 이런 예에 해당한다.

주민의 참여와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혐오시설의 입지 결정은 행정의 편의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지역 주민의 의견을 묵살하고 전문가나 시민단체, 혹은 다른 시민의 여론을 동원하는 것은 다수에 의한 소수의 폭력일 수 있으며, 여론 조작을 위한 권력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울산시는 현재까지 상당히 민주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 울산시장은 올해 1월초 구청장·군수협의회에서 화장장을 유치할 구와 군을 공모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구청장이 주민의 의사를 확인하고 그들이 동의하면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북구는 후보지 11개소가 소속되어 있는 6개 동의 주민대표를 일본 등 외국의 시설을 시찰하게 하고, 해당 지역에 다양한 유인을 약속했으며,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 비록 투표 결과, 유치를 찬성하는 지역이 한 곳도 없어서 유감이지만 울산시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지방화시대, 민주화시대에는 혐오시설의 입지를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이런 절차를 거치니까 때로는 소요되는 기간이 5년 내지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서울시의 화장장 부지 결정은 해당지역 주민과 자치구의 참여와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시대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서초구 화장장 건립을 백지화하고 적절한 절차를 새로 밟아야 한다. 그래야만 공권력에 의한 주민의 부당한 피해가 최소화되는, 진정한 지방자치시대를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김인(한국지방정부학회장, 부산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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