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복절 직후 어떤 독자가 전화를 해왔다. 옛날에는 동작동 국립묘지 입구에서 반바지 등 복장이 흐트러진 사람은 출입을 제한했고 경내도 엄숙하게 관리를 했는데, 요즈음은 국립묘지 전체가 쓰레기로 널브러진 피크닉 공원처럼 됐다고 개탄했다. 볼썽사나운 차림새의 남녀 젊은이들은 노골적인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고, 청년이나 노인이나 의자에 벌렁 누워 있는가 하면 휴대용 버너를 가져와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단속하는 사람조차 없다면서 국립묘지를 이렇게 격하해도 되는 것이냐고 분개했다.
▷국립묘지가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은 좋지만 아무리 서울에 시민 휴식공간이 부족하다 해도 국립묘지에서 고기를 구워먹게 해서야 되겠는가. 뉴스에 언뜻 비치는 말썽 많은 야스쿠니신사는 한눈에도 지극히 엄숙한 공간으로 가꾸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립묘지를 야스쿠니신사 이상으로 신성하게 가꾸어서 독립운동가, 국가유공자들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생생하게 전할 궁리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청와대 경내에 소풍을 와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된다면 국민과 정부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을지 몰라도 국립묘지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것은 호국영령을 모독하는 것밖에 안 된다. 국립묘지뿐만 아니라 요즈음 고궁들도 사극 촬영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고 전각들을 비롯해 귀중한 문화재가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야간에 가스통까지 들여와 횃불 촬영을 하는 바람에 화재 위험도 높다고 하니 우리는 도대체 어떤 문화전통과 국민정기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을 것인가?
서지문 객원 논설위원(고려대교수·영문학)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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